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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빨리빨리, 천천히

중앙일보 2019.07.08 00:16 종합 27면 지면보기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실제 접해보고 신기해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산업화의 시기가 늦어 늘 부러워만 하던 선진국 사람들이 되레 발전된 우리의 삶을 보고 놀라워하는 장면은 뿌듯함을 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들은 한국의 빠르고 질 높은 서비스입니다. 한강에서 음식을 시키면 15분 만에 배달이 온다거나 식당에서 테이블 위의 버튼을 누르면 종업원이 바로 달려오는 것과 같은 일들은 다른 나라에서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어 출연한 외국인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빨리빨리’라는 인터넷 글도 눈길을 끕니다. 상점에서 먹을 것을 살 때 계산을 마치기도 전에 먹어버린다거나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새로고침을 누르는 것, 상점에서 결제할 때 가게의 주인이 카드 서명을 대신하고 자판기 안의 컵을 잡고 음료가 나오길 기다린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마치 나의 삶을 보는 것 같아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계속 ‘빨리빨리’를 입버릇처럼 되뇌어온 한국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 가면 가장 그리워하는 것도 역시 빠른 서비스라고 합니다. 망가진 전자제품의 애프터서비스를 부탁하려니 접수 후 방문예약에만 보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바로 다음날 직접 와서 고쳐주는 우리의 생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이든지 빨리 해치우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7/8

빅데이터 7/8

점심시간에 다같이 식당으로 몰려가 15분 이내에 식사를 마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10분간 산책을 한 후 사무실에 돌아와 이를 닦는 행위를 1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집니다. 그러하니 주문한 음식이 오래 걸리기라도 하면 타박을 넘어 식당의 생존이 불가능해집니다.
 
전쟁의 폐허 뒤에 빠른 발전을 열망하던 우리들은 새벽종이 울리면 일어나 별을 보며 하루 일과를 마칠 때까지 쉼 없이 일했습니다. 3교대로 쉬지 않고 도는 작업장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의 창문을 바라보면서 발전의 희망을 느끼고 뿌듯해하던 모습은 미디어 속 인터뷰들에서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빨리 빨리’는 우리에게 그만큼의 부담을 요구합니다. 미처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 속 승객이 아슬아슬하고, 짧은 시간내 배달을 약속하는 상점에서 업무를 하는 직원들의 하루가 아찔합니다. 덜 챙긴 공사장의 건물이 위험하고 너무나 바빠서 소홀해진 가족과의 관계가 걱정됩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되는 ‘빨리빨리’는 이제 다시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많이 하려면 ‘빨리빨리’가 필요합니다. 52시간제라는 정해진 시간 이내에 업무를 끝내야 하는 새로운 규칙이 들어서며 ‘빨리빨리’가 더욱 우리를 죄어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성실히 묵묵히 쉼 없이 일하는 것은 사람 하나 없이 전부 처리하고 있다는 바다 건너 거대한 인터넷 상점의 물류센터 속 로봇의 덕목이 될지도 모릅니다. 창의적이고 숙고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필요해질 것이기에 ‘빨리빨리’는 예전의 의미를 잃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제는 ‘천천히, 그리고 깊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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