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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이인영, 양보하면 이긴다

중앙일보 2019.07.08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이인영(민주당 원내대표)이 요즘 ‘공존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정치 철학까지 담는다는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3일)에서 “진보가 유연해지고 보수가 합리적이 된다면 다 함께 더 큰 공존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설문에 공존이란 단어가 26번 나온다.  
 

황무지서 ‘공존의 정치’ 깃발
설득의 정치는 결국 여당 몫
때론 놀라운 유연성 발휘해야

지난달 23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대표 상품으로 공존의 정치를 내세웠다. 2000자가 안되는 모두 발언에서 공존이란 표현을 9번이나 사용했다. 임기 두 달을 보낸 원내대표의 대표적 두 이벤트에서 내세운 게 공존의 정치라면 이는 이인영의 꿈이라 할 만하다.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인 투사 이인영이 공존의 정치를 대표 브랜드로 전면에 내세운 건 의외다.
 
지난 5일 빡빡한 일정 속에 점심 후 짬을 낸 그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만났다. 공존의 정치에 대해 직접 물어봤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
“정치권에 들어온 후 한때 ‘저쪽은 내 적이야’ ‘저걸 무너뜨려야 해’ 이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그 뒤 공존은 정권을 잡은 보수의 공세를 막는 논리가 되기도 했는데…. 2017년 촛불광장에서 차 벽을 두고 태극기와 촛불이 대치하는데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예전 같으면 뛰어넘어서 충돌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보수·진보가 한 걸음씩 업그레이드하면 정치에도 공존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그때 내게 들어왔다.”
 
공존의 정치라는 건 뭔가.
“진보는 경직성에서, 보수는 맹목적성에서 탈피하자는 거다. 진보 꼰대, 보수 꼴통이 더는 되지 말자는 얘기다. 한국당은 태극기에서 좀 벗어나고 우리도 유연한 진보로 가자는 거다. 북유럽 국가들이 하는 공존 정치를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지금 그게 가능한가.
“힘들다. 진짜, 굉장히 힘들다. 지금 당장의 정치적 갈등이 문제다. 원내대표 될 때 내가 유연한 진보의 길을 약속하며 나왔고 한국당에도 합리적 보수의 길을 가라고 하는데….”
 
민주당은 유연한 진보인가.
“민주당 정도의 진보성은 그래도 유연한 쪽이다. 정의당보다 확실히 유연한 거고, 그런데 한국당이 개인적으론 너무 오른쪽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한국당이 너무 갔더라도 여당의 책임이 더 있지 않나.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과거처럼 야당에 대해 강력한 공격과 압박 일변도로만 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내 주특기다.”
 
원내대표실을 나서며 공존의 정치는 반드시 필요할 터인데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이인영에게서도 당장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거기다 나경원은 “문재인 정권, 신독재를 경계해야 한다”(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고 날을 세우는 상황이다. 바른미래당도 이인영의 연설을 “공존은 있되 공감은 없었다”고 깎아내렸다. 공존의 정치를 위한 여건은 사실상 황무지다.
 
여권 전체를 봐도 그다지 공존의 정치에 적극적 태세가 아니다. 우선 문 대통령이 야당과 더불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이지 않는다. 이해찬(민주당 대표)은 한국당에 대해 때론 공격적이다. 그는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느라 오신환(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불참했다. 평소 그에게서 야당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연이은 막말, 5·18 폄훼 등 한국당에 문제가 많다는 건 맞다. 하지만 여당은 야당 탓만 해선 안 된다. 야당을 어떻게든 이끄는 여당이어야 한다. 이인영이 이 시국에 공존의 정치를 얘기하고 나선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엔 부디 구호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말하는 유연한 진보는 때론 포기와 양보도 필요하다. 그걸 많이 고민해야 한다. 가령 야당이 반대하고 여권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이나 선거개혁 중 하나는 양보하는 파격은 어떨까. 또 그의 말에서 적잖게 묻어나는 ‘우리는 문제가 없는데 그쪽이 문제’라는 인식도 공존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며 의원들 앞에서 한 정견 발표는 인상이 강렬했다. 까칠하고 뻣뻣한 이인영의 변화 의지를 절실해 보이게 했다. 그런 의지라면 이인영의 유연한 진보가 변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견 발표엔 이런 대목이 있다. “반드시 야당과 공존 협치의 정신을 실천하겠다. 야당이 아무리 그래도 설득의 정치는 결국 여당의 몫이다. 때론 놀라운 유연성도 발휘하겠다”라고. 끝까지 공존의 정치를 위해 애쓴 원내대표가 되길 바란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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