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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엄청난 판문점, 더 엄청난 도전

중앙일보 2019.07.08 00:09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대기자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대기자

중국 환구시보 편집인 후시진(胡錫進)이 “38선의 로맨스”라 부른 김정은·트럼프의 판문점 ‘번개팅’에 세계인들은 전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쇼 무대의 막이 내린 뒤에도 흥분 상태에 포획돼 “이제 북·미간에 적대관계가 사실상 해소되었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런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극적인 판문점 회동은 김정은·트럼프의 트윗과 서신을 통한 대화로 쌓은 친분의 결과다. 지도자 간 사적인 관계가 국가 이익을 대체할 수 없다는 후시진의 말은 판문점 성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순식간에 불붙은 로맨스는 순식간에 식을 수 있다.
 

문 대통령, 북·미 비핵화 협상서
핵동결 고착으로 가는 것 막아야

판문점에서는 비핵화 논의는 없었다. 두 정상이 합의한 것은 2~3주 안에 협상팀을 구성해 비핵화 협상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노이 트라우마를 털고 새 협상팀이 가을쯤으로 희망하는 4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하고 미국의 대북 상응 조치가 들어간 전체 비핵화 프로세스의 타임라인을 만드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문점 회담은 생산적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국은 트럼프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핵 동결로 만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워싱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판문점 회담 다음 날 한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기사를 실었다. “판문점 회담에 앞선 몇 주 동안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새로운 협상 라운드의 토대가 될 실질적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그 개념은 북한 핵의 현상 유지를 인정하고 암묵적으로 북한을 핵 국가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없는 핵 동결이다.” 동결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단계의 하나다. 그러나 동결 기간이 길어지면 북한의 과거 핵과 현재 핵의 용인으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리처드 하스는 행정부가 비핵화의 환상(chimera)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 핵탄두의 마지막 한 개, 핵 물질의 마지막 한 뭉치, 탄도미사일의 마지막 한 개까지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김정은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가. 비핵화의 개념에 관한 합의는 전체 비핵화를 규정하는 형식이다. 지금까지 비핵화 논의는 형식 없는 내용에만 집중되었다. 남북한과 미국은 지금 단계에서 한반도 평화를 담보할 비핵화는 하나도 빠지지 않은 고갈 적(exhaustive)인 것이라는 데 합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원론적 합의는 너무 느슨해 북한이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하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정·관계와 싱크탱크 전문가의 90%를 차지한다는 비핵화 회의론자·냉소주의자들이 남발하는 희망을 담은 의견에 휘둘릴 이유는 없다. 판문점 깜짝쇼가 4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발전하면 비핵화 협상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판문점이 문 대통령에게 던진 도전은 그의 표현대로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북·미 협상에서 자신을 배제하려는 김정은을 설득해 남북 관계를 작년 수준으로 회복하고 북·미 핵 협상을 한국이 바라는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이다.
 
판문점 쇼가 북·미 4차 정상회담으로 발전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본격적인 국면을 맞는다. 문 대통령이 말한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지금이다. 짧은 기간으로 끝날 북한의 핵 동결과 미국의 민생 부문 5개 항의 대북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빅딜이 분수령이다. 그 고개를 넘으면 다음 단계는 연락사무소 개설이다. 가을쯤으로 예상되는 4차 김·트럼프 회담까지 완전한 비핵화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면 이 정도의 합의만으로도 한반도 전체 평화 프로세스에서 획기적인 성과다.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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