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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베의 몽니와 반도체 굴기

중앙일보 2019.07.08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2009년 영국 트링박물관에서 새 가죽 299점이 사라졌다. 범인은 19살의 천재 플루티스트 에드윈 리스트. 그가 노린 건 새의 깃털이었다. 낚시용 플라이 제작에 쓸 깃털 때문에 박물관을 털었다. 더 멋진 플라이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극락조 등의 깃털은 ‘희귀템’이다. 보호종으로 사냥과 거래가 금지된 탓이다. 때문에 깃털 시장은 공급보다 수요가 넘친다. 공급자 독점 시장이다.
 
독점은 시장 경제의 필수요소인 자유로운 거래의 적이다. 이윤을 위해 가격과 공급량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독점은 피할 수 없다. 우월적 지위 때문이다. 중국이 무기화하는 희토류처럼 희소 자원을 가진 경우다. 독보적이며 대체불가능한 기술을 확보했을 때도 독점적 지위를 갖는다.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 제재에 나선 반도체 소재 3종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그런 탓에 국내 반도체 생산 업체가 몇 달 버티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본의 정밀 타격에 한국의 대응은 우왕좌왕 수준이다. 정부는 WTO 제소와 소재 국산화 계획을 들고 나왔다. 민간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시작됐다.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집 앞까지 불길이 다가왔는데 진화보다 화재 예방시스템 깔 궁리를 하는 모양새다.
 
문제 해결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이번 사태의 밑바탕에는 한일 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합의에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일본의 불만이 깔려 있다. 외교적 해결책 모색이 먼저인 이유다. 아베의 몽니에 휘청대는 사이 중국 국유기업 칭화유니그룹이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에 재시동을 걸었다. ‘반도체 강국’ 한국의 우월적 지위가 백척간두에 섰다. 앞뒤를 재고 헛발질할 시간이 없다.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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