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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 살해 연 55건…이혼 후 남남돼도 범행 많다

중앙일보 2019.07.08 00:04 종합 8면 지면보기
위기의 가족 범죄<하> 
위기의 부부

위기의 부부

지난 4일 전남 영암에서 발생한 베트남 이주여성 아내 폭행 사건은 최근 부부 간 폭행·살인 등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반 부부뿐 아니라 국제결혼 부부, 이혼 후 남이 된 전(前) 부부 사이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가정이 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잇단 극단 범죄 … 위기의 부부들
“남편, 아내 외도의심 우발적 살인
아내는 폭행 못이겨 계획범행도”
이혼 뒤에도 사생활 간섭 집착
국제결혼 늘며 가정 폭력도 증가

‘남보다 못한 부부’ 간에 벌어지는 극단적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평생의 동반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수사한 전체 살인사건 301건 중 남편이 아내를 숨지게 한 사건은 55건(18%)이나 됐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까지 합치면 부부 간 살인 비중은 더 늘어난다.
  
빈곤·위자료·보험금 갈등도 많아
 
부부 간에 폭행이나 살인이 벌어지는 이유는 한 가지로 단정 짓기 어렵다. 피해자가 남편인지 혹은 아내인지에 따라 동기가 엇갈리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부 간 범죄에는 공통적으로 치정·가정폭력·금품 문제가 엮여 있다고 분석한다. 또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달리 부부는 혼인 전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데다 언제든 법적으로 남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툼이 극단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7월 대전 서구의 자택에서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된 A(58)씨는 평소 아내의 차량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몰래 설치하는 등 외도를 의심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평소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집착해 살해한 점을 고려하면 엄중처벌을 피하기 어렵다”며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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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부 간 범죄는 치정 문제와 가정폭력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 외도 의심 등으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예가 많고, 아내가 남편을 살해할 때는 가정폭력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패턴이 많다”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부부 간 불화를 부르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가정의 빈곤 문제, 위자료나 양육비, 보험금 등 금전 문제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케이스다. 특히 금전이 얽힌 살인 사건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보다는 빈곤에 시달리는 가정에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공 교수는 “부부 사이라도 빚이나 금전 손실 등 문제를 서로 숨기는 경우가 많고, 이런 문제들이 종국엔 폭력 등 극단적 범죄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제결혼이 늘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국가에서 살던 남녀가 결혼해 단기간에 가정을 꾸리다 보니 충돌이 생기는 일이 많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주 여성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신고 등 각종 절차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 폭력 등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력·말다툼 ‘전조현상’ 주목해야
 
부부가 이혼을 해 남이 된 이후에도 폭력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 양육비나 위자료 등이 얽혀 이혼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은 데다 이혼 후에도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지 않고 집착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전(前)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우발적이라기보다 계획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 실제 고유정은 전 남편을 살해하기 전 미리 흉기와 졸피뎀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고, 살해 뒤에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등 참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10월 서울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김모(50)씨도 범행 전 장소를 여러 차례 답사하고, GPS로 아내를 추적하는 등 치밀하게 범죄를 준비했다.
 
김성순 법무법인 한일 변호사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부부 사이에선 주로 우발적 범죄가 벌어지는 일이 많지만, 오히려 물리적 거리가 있는 이혼 부부 사이에선 골 깊은 원한에 따른 계획범죄가 벌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수의 가해자들을 살펴보면 ‘다시 볼 일이 없는 남’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사전에 범행을 준비해 범죄를 저지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부부 간 살인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가정 폭력이나 극심한 말다툼 등 ‘전조 현상’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갈등이 없는 가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며 “부부 간에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정신적 폭력까지 겹쳐 불화가 커지면 걷잡을 수 없는 범죄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부 간 살인은 범행의 잔혹성이나 계획 살인 여부, 동기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존속살해처럼 법에 따로 가중처벌 조항이 규정돼 있진 않다.  
 
잇따르는 부부 간 살인
▶금은방 남편 살인 사건 2019년 6월 서울 전농동 금은방서 아내 A(73)씨가 남편(76)을 목 졸라 살해. 평소 A씨는 남편 외도를 의심해 자주 다툼 벌여.
 
▶전 김포시의회 의장 아내 살인 사건 5월 15일 김포시 자택에서 술에 취한 유승현 전 의장이 아내를 폭행해 살해. “성격 차이로 감정이 많이 쌓였다”.
 
▶양주 아내·아들 살인 사건 3월 18일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안모(40)씨가 아내(34)와 아들(7) 살해. 차량에서 목숨을 끊으려다 체포돼.
 
▶등촌동 전처 살인 사건 2018년 서울 등촌동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김모(50)씨가 전처 살해. 김씨는 전처의 차량에 GPS를 부착하는 등 계획 범죄.
 
손국희·남궁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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