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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양자역학이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을, 기초가 시장을 만든다

중앙일보 2019.07.07 17:52
세계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검출기의 모습. CMS는 CERN이 보유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곳에만 43개국 3800여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기초연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검출기의 모습. CMS는 CERN이 보유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곳에만 43개국 3800여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기초연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 세시 지하 87.9m. 흡사 거대한 눈동자를 방불케 하는 대형 입자검출기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실물을 이곳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그 웅장한 크기와 정교한 구조에 곧바로 압도됐다. CMS의 직경은 15m, 중량은 약 1만4000t에 달한다.
 

기초과학 상징 프랑스 CERN 입자 검출기 취재
CMS 한 대에만 43개국 연구진 3800명 투입
빅뱅·우주 등 기초연구, 미래 시장 위한 초석
과학계, “기초 연구 백년 내다보고 투자해야”

더욱 놀라운 것은 CMS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입자를 가속하고 충돌시키는 기초 연구 시설인 LHC는 그 둘레만 27㎞에 달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의 발밑은 상당 부분 CERN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LHC와 CMS는 기초과학에 대한 유럽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CERN은 LHC를 구축하는 데만 총 4조 6000억원이라는 비용을 투입했다. 4대의 입자 검출기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CMS 검출기 한 대에만 43개국에서 온 연구진 3800여 명이 붙어 기초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CMS를 비롯한 입자 검출기의 목적은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초기 모습을 재현하고, 당시의 우주가 어떤 원소와 입자들로 이뤄졌는지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당장은 돈도 밥도 안된다는 말이다. 우주를 재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유럽 각국이 이처럼 거대한 기초 연구시설을 구축한 걸까.
 
CERN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역시 처음에는 양자역학 연구에서 응용됐다”며 “처음부터 산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큰 시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기초가 응용돼 제품과 시장이 되고, 나아가 미래 먹거리가 된다는 CERN 과학자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 결과 CMS는 2013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며 과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같은 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한국 역시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1년 대전에 라온 중이온 가속기가, 2023년에는 부산 기장에 의료용 중입자가속기가 차례로 완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출범 2주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는 올해 사상 최초로 연구·개발 예산 20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과학계는 여전히 이 같은 정책이 지속 가능할 지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당시 문 정부 과기정책을 평가한 대학교수들은 “기초과학 정책은 백 년을 내다보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라온 중이온 가속기 건설을 추진 중인 기초과학연구원은 지난해 예산 감축 논란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기초에서 응용이, 응용에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창출되려면 오늘 뿐 아니라 내일의 먹거리를 늘 고민해야 한다. 기초과학은 미래 시장을 여는 초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세시(프랑스)=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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