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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국 '기획 월북'한 듯···부친 최덕신 전 외무장관은 '남한판 황장엽'

중앙일보 2019.07.07 16:39
최인덕씨가 6일 평양국제공항에서 입북 소감을 밝히는 모습. [우리민족끼리 캡처]

최인덕씨가 6일 평양국제공항에서 입북 소감을 밝히는 모습. [우리민족끼리 캡처]

1986년 북한으로 망명한 최덕신 전 외무부장관의 차남 최인국(73)씨가 정부의 방북 승인 없이 불법 입북한 것이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6일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최씨는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도착 소감으로 “우리 가문이 대대로 안겨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며 또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의 유지대로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여생을 깡그리 바치려 한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남한판 황장엽'
조부는 '김일성 스승' 알려져

 
최씨는 이번 평양행에 앞서 정부에 방북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부는 최씨의 방북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와 관련 최씨의 ‘기획 월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대북 소식통은 “항공편으로 입북하려면 북한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며 “중국 베이징 또는 선양 주재 북한 대사관 등에서 비자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또 “북한도 체제 선전에 활용가치가 있는 남한 주민을 선별해 받아주는 만큼 최씨의 월북은 북한 당국과 사전 교감하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덕씨가 6일 평양국제공항에서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캡처]

최인덕씨가 6일 평양국제공항에서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캡처]

이번 월북 이전에 최씨는 12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2001년 이후 가족 상봉 및 성묘 목적의 방북이 잦았다. 부친과 함께 북에 망명한 모친 류미영 전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위독했던 2016년 11월엔 북측의 초청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고 북한을 다녀왔다. 모친이 사망한 이후에도 2017·2018년 11월 사망 1·2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 승인 하에 방북했다. 2017년 11월 방북 땐 문재인 정부 들어 방북이 허가된 첫 민간인으로 기록됐다.  
 
최씨는 이번 월북 과정에선 정부에 방북 신청·승인 없이 무단으로 입북해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상 불법 입북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최씨가 돌아오지 않는 한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최씨 같은 자진 월북 사례는 근래 들어 드물었다.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북 간 체제 경쟁이 치열했던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월북하는 이들이 많았고 북한도 대부분 받아들였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정보 및 체제선전 가치가 있는 이들만 선별해 받고, 나머지는 추방 조치해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990년대 후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은 이후로 월북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고령의 최씨를 입북시킨 건 대를 이어 북한을 택했다는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며 “최씨 부모와 조부가 북에서 고위층 인사였던 점도 작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최덕신 전 외무부 장관(왼쪽)이 부인 류미영(오른쪽)과 생전 김일성 주석을 만난 모습. [중앙포토]

최덕신 전 외무부 장관(왼쪽)이 부인 류미영(오른쪽)과 생전 김일성 주석을 만난 모습. [중앙포토]

최씨의 부친 최덕신 전 외부무장관의 86년 북한 망명은 6·25전쟁 이후 남한 거물급 인사가 월북한 첫 사례였다. 그는 ‘남한판 황장엽’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서독대사 시절의 최덕신.[중앙포토]

주서독대사 시절의 최덕신.[중앙포토]

최덕신은 평안북도 의주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엔 한국 육군 장교로 지냈고, 56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 서독 주재 대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서독 대사 이후 67년부터 천도교 교령으로 활동했으나 종교계 지원 문제 등으로 박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후 76년 부인 류씨와 도미(渡美)했다. 이후 86년 9월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 영구 귀국하겠다고 발표했다. 차남 인덕씨를 포함 당시 성인이었던 자녀 다섯은 남한에 놔둔 채였다. 정부에 따르면 장남은 사망했고 딸 세 명은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덕신 전 외무부장관. [중앙포토]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덕신 전 외무부장관. [중앙포토]

아울러 인덕씨 조부이자 최덕신의 부친 최동오는 만주 독립운동 시절 김일성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최동오는 해방 후 월북했고, 최덕신의 북한 망명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탓에 최덕신은 입북 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보장받았고, 89년 췌장암으로 사망했을 때도 북한 당국이 국가장을 치러줬다. 최덕신 사망 후엔 부인 류씨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등 남편 직위를 이어받았다. 천도교청우당은 북한 노동당의 관변 야당이다. 류씨는 2000년 제1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해 인국씨 등 가족과 상봉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11월 북한에서 사망했다.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세워진 최덕신의 비석. [중앙포토]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세워진 최덕신의 비석. [중앙포토]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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