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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이 되면…" 바둑친구와 약속 지킨 신라 효성왕

중앙일보 2019.07.07 12:00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30)
사진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위대한 유산』의 외로운 부호인 노라 딘스무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며, 소설 속 해비셤의 역할을 영화에서는 노라 딘스무어가 맡았다. 주변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그는 조카를 이용해 세상에 복수의 칼날을 간다. [사진 네이버 영화]

사진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위대한 유산』의 외로운 부호인 노라 딘스무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며, 소설 속 해비셤의 역할을 영화에서는 노라 딘스무어가 맡았다. 주변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그는 조카를 이용해 세상에 복수의 칼날을 간다. [사진 네이버 영화]

 
세상을 살아가려면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친구끼리 껄껄 웃고 세상 얘기를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만일 친구가 없다면 외로움에 시달리며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 이런 삶에서 즐거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양의 소설을 보면 친구 없이 외롭게 사는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나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주인공이 그러하다. 이들은 외롭게 지내다 보니 사회와 단절돼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도 한다.
 
절친 3명을 만들어라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에 나오는 여성 해비셤도 고독한 삶을 산 사람이다. 그녀는 부유하지만 고독 속에서 생을 보낸다. 해비셤은 결혼식 때 약혼자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남성에 대한 지독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빛바랜 웨딩드레스를 입고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내에서만 지낸다. 그리고 '에스텔라'라는 소녀를 세상에 대한 복수의 도구로 삼는다.
 
소설이지만 친구가 거의 없어 외롭게 산 해비셤의 삶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녀의 삶에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있다면 에스텔라를 자신의 복수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증오심 가득 찬 계획이라고 할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해비셤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3위의 경제 강국인 일본에서도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가오 가즈히로의 『남자의 고독사』에서는 “절친 세 명을 만들어라”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생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 삼국유사 권5에 효성왕과 신충의 일화가 등장한다. 바둑을 두는 취미로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끝까지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 [사진 문화재청]

생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 삼국유사 권5에 효성왕과 신충의 일화가 등장한다. 바둑을 두는 취미로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끝까지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 [사진 문화재청]

 
고독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친구와 교류해야 한다. 친구와 관계 속에서 고독을 극복하고 생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취미를 같이 하는 친구와의 교류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바둑 분야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효성왕과 신충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향가 한 수가 적혀 있다. 신라 34대 임금 효성왕은 왕자 시절 신충이라는 소년과 바둑을 두며 친하게 지냈다. 효성왕의 왕자 시절 이름은 김승경이다. 승경 왕자는 신충과의 우정이 깊어지자 훗날 자신이 왕이 되면 도와달라고 했다.
 
벼슬길 오른 효성왕의 바둑 친구 
그러나 왕위에 오른 효성왕은 바쁜 정무 때문에 신충을 잊고 있었다. 신충은 다소 원망하는 마음을 담은 다음과 같은 시가(詩歌)를 궁궐 앞 잣나무에 붙인다.
 
신충은 효성왕을 원망하는 시 '원수가'를 잣나무에 붙였다. 사진은 잣나무 위에서 청설모가 잣을 먹는 모습. [중앙포토]

신충은 효성왕을 원망하는 시 '원수가'를 잣나무에 붙였다. 사진은 잣나무 위에서 청설모가 잣을 먹는 모습. [중앙포토]

 
무릇 저 잣나무
가을 아닌데 시들어지네
너를 어찌 잊으랴 하시던 말씀
우러러 뵙던 낯이 계시오나
달그림자 비친 연못에
가는 물결 하소하는 듯
님의 얼굴 뵈올건가
세상일 애처롭네
 
이후 잣나무의 색깔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충의 시가를 본 효성왕은 옛일을 생각해 내고 신충을 부른다. 이 시가를 ‘원수가(怨樹歌)’라고 부른다. 삼성문화사의 『국어대사전』 세계인물편에 의하면 신충은 738년(효성왕 2년)에 중시(中侍)가 되었다고 한다. 효성왕이 신충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신충은 몇 가지 벼슬을 더 하다가 나중에 승려가 되어 효성왕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취미를 통한 우정이 끈끈하고 오래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취미를 즐기는 사이에 인간적인 친밀감 및 신뢰감이 결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의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면 친구 관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음을 터놓고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진정한 벗이 있는지 체크해 보자.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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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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