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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마법의 세상'을 보는 법

중앙일보 2019.07.07 09:00

[더,오래] 박보미의 아트 프리즘(3)

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관 안팎의 작품. 어떻게 친해지면 좋을까? 미술을 전공한 필자가 낯선 예술 이야기를 편안한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다. <편집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예술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표현해내곤 하는데, 그는 이를 그림에서 개성으로 드러냈다. [중앙포토]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예술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표현해내곤 하는데, 그는 이를 그림에서 개성으로 드러냈다. [중앙포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당신이 본다는 것(Seeing)에 관해.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신비다. 옛날에는 생명체의 눈이 일종의 광선을 내뿜는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보는 방식에 따라 선이나 악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이 ‘눈’이 렌즈에 불과하고 두뇌로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뇌가 어떤 방식으로 보는지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있다.
 
예전에는 주위 세계를 오늘날의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보았다. 본다는 행위는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이며 이 선물을 통해 겪는 세계는 아주 경이로웠다. 지금의 우리는 경이로운 것을 잃어버린 세대에 산다. 뭔가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놀라움이 없는 세계에서 놀라움을 주는 서비스는 돈을 번다. 그러나 여전히 신비로운 요소는 없다.
 
진정한 경이로움은 일상적인 현실과 마법적인 것이 섞여 있을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마법적인 것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그것은 도처에 있다. 익숙한 일상에 마취되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마취된 무감각 상태는 서서히 우리의 생기를 빼앗아 생명력을 잃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예술의 힘을 빌려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하곤 한다. 화가의 마음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거나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보이지 않는 차원의 세상을 느끼는 것이다. 화가를 통해 마법적인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싶을 때 적절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작품에 스민 인생의 빛

 
Vincent Van Gogh, Mountain Landscape Seen across the Walls, 1889, Oil on Canvas, 70.5 x 88.5 cm [출처 박보미]

Vincent Van Gogh, Mountain Landscape Seen across the Walls, 1889, Oil on Canvas, 70.5 x 88.5 cm [출처 박보미]

 
반 고흐는 당시 새로 발명된 사진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했다. 즉, 스쳐 지나가는 공기의 효과와 몰려오는 구름 아래에서 빛나는 햇살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창작자에게 자신만의 것.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표현이 독특한 자신만의 언어인지를 분간해 내는 것은 지난한 삶과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되니, 몇 번의 시도나 공부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는 화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고, 독실한 기독교도적 삶에 헌신했다. 소유물을 전부 남에게 주었고, 넝마 같은 셔츠를 입고 맨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는 가난한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나, 티푸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왔다.
 
그러다가 그가 2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빛이 그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 중 미술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위대한 작업물들은 10년밖에 안 되는 기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최초의 호평을 받은 직후 그는 자살했다.
 
비극적이게도 이후 그의 그림은 급속도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삶이 드라마틱해서라거나 독특한 화풍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연을 신의 사랑의 증표로 표현했다. 그의 붓질은 그 자신의 사랑을 담아 쓰다듬는 눈길 그 자체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 뜨거움은 마법적 힘이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어둠 속에서도 폭발하는 생명력

 
Vincent van Gogh, Irises, 1889, Oil on canvas, 74.3 x 94.3cm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Vincent van Gogh, Irises, 1889, Oil on canvas, 74.3 x 94.3cm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붓꽃(아이리스)은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부터 몰두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다. 심지어는 생 레미(Saint-Rémy)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쇠약한 동안에도 붓꽃 그리기에 열중했다. 그는 붓꽃이 불안한 인간을 보호해 주는 형태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왼쪽의 유일하게 창백한 한 송이가 눈에 띈다. 화면 바깥으로도 넘치게 그려진 푸른 꽃들과 대조적으로 단 한 줄기로 일어선 그 꽃은 다른 꽃들을 향해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다른 꽃들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싶은 것처럼. 어쩌면 고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흰 붓꽃에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1889년 5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입원한 사건 이후 죽기 직전의 해에 그는 거의 130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그 첫 주에 시작한 그림이다. 촉촉한 갈색 땅 위로 뻗어 올라 넘실거리는 선명한 색채의 아이리스 무리가 화면 전체로 퍼져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프랑스 오베르(AUVERSUROISE)에 있는 반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프랑스 오베르(AUVERSUROISE)에 있는 반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평소 그는 식물과 계절에 대한 관찰이 뛰어난 일본 미술의 특징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 그림 역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꽃잎과 이파리, 공기의 움직임을 특유의 다양한 물결무늬로 표현하며 구조적으로 접근했고, 꽃 하나하나의 생김새와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세계 어디서나 여름은 활기의 계절이다. 깊은 죽음의 무기력 속에서 쇠약해진 체력으로 붓을 든 그에게, 온통 푸른 정원의 생명 하나하나가 새삼 하나하나 얼마나 경이롭게 느껴졌을지 상상해본다. 축축하고 달콤한 땅의 냄새, 물이 올라 싱싱한 풀잎 하나하나가 태양 빛 아래 술렁이며 향기를 내뿜는다. 그는 생명력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정원의 그 따사롭고 향긋한 공기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불안한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길 바랐을 것이다.
 
말년의 그가 붓꽃의 만개를 찬양하며 힘찬 붓질로 새긴 생명력의 취기가 지금 우리에게도 농밀하게 풍기고 있다. 당신이 있는 창밖에 가득한 풍경은 어떠한가. 고흐였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작품에는 자연의 기이한 아름다움이 폭발하는 마법적인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고흐의 어떤 호소가 담겨있다. 지친 당신이 어린아이의 놀라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기를 기대하면서.
 
박보미 아트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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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 박보미 아트 칼럼니스트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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