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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문자 보냈다고 욕설·반말…나도 화가 폭발했다

중앙일보 2019.07.07 07:00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15)
무심코 한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노트북을 수리하고자 기사를 불렀다가 봉변을 치렀다. 나는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연락하는 무례를 범했고, 연락을 받은 수리 기사는 내게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자료 pixabay, 제작 조혜미]

무심코 한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노트북을 수리하고자 기사를 불렀다가 봉변을 치렀다. 나는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연락하는 무례를 범했고, 연락을 받은 수리 기사는 내게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자료 pixabay, 제작 조혜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시킨의 시가 있다. 살면서 무심코 한 행동이 때로는 서로에게 큰 흉기가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노트북을 사고 엑셀에 문제가 생겨 수리점 기사에게 문의했다. 방문한 기사는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내 아들보다 어려 보였다. 노트북 점검을 한 그는 포맷 외엔 방법이 없다 한다. 어쩌겠는가. 그나마 깔았던 한글까지 모두 날리고 새 컴퓨터를 다시 포맷했다. 그렇게 엑셀을 깔고 청년은 돌아갔다.  
 
그날 밤 급한 원고작업 때문에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이번엔 한글이 먹통이다. 혼자는 도무지 모르겠다. 기사에게 SOS를 청해야 할 상황 같았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아, 이 일을 어쩐다? 내일 연락하면 빨라야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방문할 확률이 높았다. 시계와 노트북을 번갈아 보던 나는, 부디 그 기사가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기를 바라며 결국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 기사가 내 문자를 보고 스케줄을 조정해 서둘러 와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 큰 화근이었다.
 
처음 보낸 문자. [출처 김명희]

처음 보낸 문자. [출처 김명희]

 
문자를 보내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그 기사였다. 내가 잠을 깨웠구나 싶어 사과부터 했다. “여보세요. 어머나 기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하는데 청년이 외쳤다. “아줌마! 한글이 안 되긴 왜 안돼? 내가 아까 확인했잖아? 아줌마도 봤잖아? 아 X발 존나 짜증 나게 이 밤중에 문자질이야 문자질이! 당장 컴퓨터 켜요! 당장 키라고! 내 말 안 들려?”
 
왜 나는 상대가 밤에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을 것으로 단정했을까? 밤에 보낸 내 문자가 대형태풍을 몰고 왔다. 어쩌겠는가. 잘못은 내가 했으니 비는 수밖에. “기사님 늦은 시간에 문자 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기사님이 내일 문자를 볼 줄 알았습니다. 제 딴에는 내일 스케줄 반영해 와달라고 보낸 건데, 화나셨다면….”
 
청년이 말했다. “글쎄 여러 말 말고! 컴퓨터나 켜! 아- X나 짜증 나네! 빨리 켜! 지금 해준다는데 왜 잔말이 많아! 빨리 팀뷰어 열라고! 안 들려? 아줌마! 귀머거리야?”
 
‘오 마이 갓’이다. 물론, 내 잘못이 크니 유구무언이다. 그러나 이쯤 되니 나도 미안한 마음이 구만리로 달아나버렸다. 화살처럼 내게 꽂히는 반말과 욕설에 혈압이 올랐지만, 자존심 상해도 어쩌겠는가. 노트북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나는 얼른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화가 난 청년이 시키는 대로 팀뷰어를 열었다. 그가 원격으로 처리하는지 마우스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팀뷰어 열고 설치하기 눌러요! 뭔 말인지 알아들어? 빨리 열라고! 나도 얼른 하고 자야 할 거 아냐! 아-증말! X나 짜증 나네!” 저렇게 말을 막 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밤늦게 문자 보낸 것은 상대에 대한 실례고 잘못한 것 맞다. 그렇다고 제 엄마 나이보다 더 된 나에게 저렇게까지 해야 화가 풀릴까? 현기증이 밀려왔다.
 
인내심이 담장을 넘으려 했다. 비번 찾아 불러주고 갖은 욕을 다 들으며 진행하다 폭발 직전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남편을 급히 깨워 수화기를 넘기고 나는 뒤로 빠졌다. 욕을 듣고 나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청년과 남편이 주고받은 문자. [출처 김명희]

청년과 남편이 주고받은 문자. [출처 김명희]

 
물론 내가 경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를 향해 날아든 청년의 거친 말과 욕설은 듣고 있기 참 힘들었다. 내가 화를 삭이지 못하자 남편이 말렸다. 이 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한발만 멀리 내다보면 다 이웃이고, 두 다리만 건너면 지인의 사촌들이라 하지 않던가? 나도 그 청년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그 후 나는 한동안 코드가 뽑힌 가전제품처럼 정신이 멍했다. 부디 지금은 그 청년도 화난 마음이 모두 풀어졌기를 바라본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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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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