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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폭염 바다 떠다닌 난민 외면한 유럽 양심 찌른 31세 女선장

중앙일보 2019.07.07 06:30
지난 6월 유럽은 뜨거웠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열기가 북상하면서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으로 프랑스(5)·독일(4)·영국(3)·스페인(2)·이탈리아(1)에서 모두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디언 등 유럽 언론에 따르면 3억2100만 명이 고온에 시달렸으며 최고기온 기록도 줄줄이 깨졌다. 일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선 섭씨 45도가 넘었으며 지난달 28일 프랑스 남부 갈라르그 르몽퇴는 기상관측 사상 최고기온인 섭씨 45.9도를 기록했다. BBC방송은 유럽연합(EU) 지구관측 프로그램인 코페르니쿠스의 발표를 인용해 지난 6월 유럽대륙의 평균 기온이 역대 가장 높았다고 전했다.  

라케테 선장, 난민 구조하다 이탈리아서 체포
난민 구조해도 입항 거부로 폭염 바다 떠돌아
지중해 떠도는 수십만 유랑 난민 국제적 관심
반난민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 입항금지
EU조사, “지난해 15만 지중해 거쳐 유럽행”
2일엔 리비아 난민 구금시설 폭격 44명 사망
국제이주기구(IOM)·국제적십자위원화(ICRC) 안간힘
IOM 리비아 사무소 직원 인터뷰 “위기 상황”

시워치 3호의 선장인 카롤라 라케테 선장이 배 안에서 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워치 3호의 선장인 카롤라 라케테 선장이 배 안에서 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40도 넘는 기온 속 난민 구조선 무단 입항  

 
이런 열 재앙 속에서 지중해에는 난민들을 태운 난민선이 수없이 떠다니고 있다. 지난달 29일엔 독일 비정부기구(NGO)인 시워치의 난민구조선 시워치 3호가 난민들을 태우고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의 항구에 무단 입항했다. 람페두사 섬은 지리적으로 이탈리아 본토보다 북아프리카에 더 가까워 리비아나 튀니지에서 출발한 아프리카 전역의 난민이 몰려오고 있다.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시워치 3호는 6월 12일 리비아 인근의 지중해 해상에서 표류하던 52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구조했지만, 이탈리아 당국은 임산부 2명을 포함한 10명만 하선 허가를 해주고 나머지 42명은 입항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16일간 바다를 떠돌았지만 끝내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입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극우 반이민·반난민 성향 정당인 ‘동맹’의 대표로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지난해 6월 취임 뒤 난민선의 입항을 금지해왔다.  
 
지중해를 항해하는 난민구조선 시워치 3호(왼쪽)을 이탈리아 경비선이 감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중해를 항해하는 난민구조선 시워치 3호(왼쪽)을 이탈리아 경비선이 감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극 막으려 입항” 독일인 선장 체포 파장  

 
네덜란드 선적인 시워치 3호의 독일인 선장 카롤라 라케테(31)는 이날 입항 과정에서 이탈리아 경찰의 순찰선과 충돌하면서 불법 난민 지원과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라케테 선장은 항구에 입항한 29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폭력적인 행동이 아니라 비극을 막기 위한 불복종”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라케테 선장은 “나는 지치고 절박한 사람들을 육지로 데려가려고 한 것 뿐”이라며 “그들(난민들)은 전쟁 중인 국가에서 피란한 사람들로 내가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라고 람페두사 입항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라케테 선장이 체포되자 독일에서 그를 돕는 모금이 시작돼 첫날에만 35만 유로(약 4억5000만원)가 넘게 모였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여러 지역에서 “난민 구조는 범죄가 아니다” “유럽이 부끄럽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체포에 반발하며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난민 구조 문제가 전 유럽 차원의 인권 문제로 번진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연합뉴스]

 

독일 정부에 이어 교황까지 나서며 국제연대

 
독일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라케테 선장의 입항은 표류 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탈리아 당국에 그의 석방을 요해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이 고조됐다.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공영방송 ZDF와 인터뷰를 하며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라케테 체포를 비판했다. 그러자 이탈리아의 살비니 부총리는 “독일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걱정하라”며 “독일인들에게 이탈리아 법을 어기지 말라고 요구하라”고 말했다. 살비니는 독일 NGO가 운영하고 네덜란드 선적인 이 난민 구조선에 승선한 난민들은 독일이나 네덜란드가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섰다. 교황이 오는 8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난민과 지중해에서 그들의 목숨을 구하는 구조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사실상 난민과 난민 구조자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미사를 봉헌하겠다는 이야기다. 교황은 즉위 4개월 만인 2013년 7월 8일 첫 외부 방문지로 람페두사 섬을 방문했다. 당시 이 섬을 방문한 교황은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을 추모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정치적 난민이던 부친이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이민선을 탔다가 해안에서 좌초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왔다. 자신이 ‘이민자와 난민의 아들’이라고 강조하면서 난민에 대한 연민을 나타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법원은 “라케테 선장의 조치는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지킨 것”이라며 2일 그를 석방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를 두고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비난했으며 이탈리아 법관단체 ANM은 살비니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석방된 라케테 선장 측은 살비니 부총리가 모욕적인 발언으로 증오를 부추겼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시워치 3호에 타고 있는 난민들.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시워치 3호에 타고 있는 난민들.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지난 6일엔 이탈리아의 난민구조 NGO인 ‘메디테라네아 세이빙 휴먼스’의 난민구조선 알렉스호가 람페두사에 입항했다. 지난 6일 리비아 앞바다에서 난민 41명을 구조한 이 배는 애초 11시간 정도 떨어진 몰타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난민들의 건강과 위생 상태를 고려해 가까운 람페두사에 입항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5일 리비아 앞바다에서 구조한 난민 65명이 승선한 독일 NGO ‘시아이’의 난민구조선 ‘알란 쿠르디’도 람페두사 입항을 준비 중이다. 이 구조선의 선명은 2015년 9월 터키에서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향하다 선박 난파로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이름을 땄다.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는 카롤라 라케테 선장[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는 카롤라 라케테 선장[로이터=연합뉴스]

 

난민선 침몰에 수용시설 폭격까지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난민들의 비극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튀니지의 동남부 항구인 자르지스 앞바다에선 지난 1일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해 82명이 실종되고 4명이 구조됐으나 그중 한 명은 숨졌다고 국제이주기구(IOM)가 밝혔다. 리비아에선 지난 2일 수도 트리폴리 인근 타조라의 난민 구금시설이 공습을 받아 적어도 44명이 목숨을 잃고 13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트리폴리를 근거지로 삼는 리비아 통합정부(GNA)는 난민시설을 무기관리 작업장으로 이용해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1940명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에 도착했으며 또 다른 350명은 바다에서 숨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달 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UNHCR의 카를로타 사미 대변인은 “우리가 즉각 개입하지 않으면 (지중해에) ‘피의 바다’가 열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5만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항해해 유럽에 입국했다. 이 가운데 5만5000명이 스페인을 거쳤으며 나머지는 지중해를 항해해 이탈리아나 몰타로 몰리고 있다. 지중해를 거치는 난민 숫자는 지난 5년 새 최저인데도 이 정도다.  IOM과 국제적십자회(ICRC),, UNHCR 등이 지중해 양쪽에서 필사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지중해에서 난민구조 비정부기구(NGO)인 ‘SOS 지중해’ 소속 대원들이 한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구조된 아기가 탄 목선은 리비아 해안에서 약 50㎞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됐으며 250명 이상이 타고 있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지중해에서 난민구조 비정부기구(NGO)인 ‘SOS 지중해’ 소속 대원들이 한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구조된 아기가 탄 목선은 리비아 해안에서 약 50㎞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됐으며 250명 이상이 타고 있었다. [EPA=연합뉴스]

 

인도주의 재앙 겪는 리비아 IOM 공보관 인터뷰

 
본지는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의 도움으로 리비아 사무소의 사파 음세흘리 공보관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현지 난민 상황을 알아봤다. 수많은 아프리카 난민이 몰린 리비아는 내란으로 지난 2일 난민 수용시설이 폭격당하면서 인도주의적 재앙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 리비아에는 얼마나 많은 난민이 머물고 있나?
“IOM 리비아 사무소가 조사한 결과 현재 내전이 한창인 트리폴리 인근에만 11만 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다. 이 가운데 지중해로 항해에 나섰다가 구조돼 돌아온 사람을 포함한 3400명은 29개 이상의 수용시설(구금시설)에 억류돼 있다. 내전 격화로 트리폴리 인근에 살던 리비아인 9만3925명도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 유랑 중이다. 이는 지난달 6만6000명에서 더욱 늘어난 숫자다.”
현재 리비아 난민 사정은 어떤가?  
“폭염도 폭염이지만 리비아 내전이 고조되고 있어 더욱 문제다. 지난 7월 2일 저녁에는 민간인 지역에 대한 폭격이 가해졌고, 그 과정에서 이주자 수용시설에 갇혀있는 난민과 이주자가 공격을 당해 44명 이상이 사망하고 130명 이상이 부상해 치료 중이다. 실제 이 수용시설에는 여성, 어린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이주자들은 무너진 건물에서 또 다른 임시 수용소로 옮겨지는데 그곳도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난민 수용시설 폭격에 대한 IOM과 국제 인도주의 기구의 대응은?
“폭격 직후 IOM 리비아 사무소의 오만 벨베이시 소장은 “(폭격으로)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으며 모든 측면에서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IOM과 유엔난민기구(UNHCR)는 3일 공동 선언문을 내고 국제법에 반하는 민간인에 대한 폭격을 자행한 주체를 명백히 조사하는 것은 물론 리비아에 있는 난민을 구금하는 수용시설 제도를 없앨 것을 촉구했다.”
IOM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IOM은 수용센터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리비아에 발이 묶인 모든 이주자가 기본적인 인도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의료진을 파견해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트리스와 같은 기본 생필품, 깨끗한 식수, 위생용품 등을 전달한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료와 정신질환 치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난민 입항을 금지한 이탈리아 당국의 조치는 어떻게 보나?
“유엔기구인 IOM은 유엔 회원국 정부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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