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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경계 철책 있어 뭐하나” vs “안보·역사적 가치 위해 보존”

중앙일보 2019.07.07 05:00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의 한 해변에 있는 군 경계 철책.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철책 때문에 수십년간 불편을 겪어왔다고 하소연했다. 박진호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의 한 해변에 있는 군 경계 철책.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철책 때문에 수십년간 불편을 겪어왔다고 하소연했다. 박진호 기자

 
“북한 사람들이 항구로 들어오는 판에 철책 쳐놓은 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제 철거할 때도 됐죠.” 지난 3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의 한 해변. 마을 주민과 낚시를 온 관광객이 평상에 앉아 경계 철책으로 막혀 있는 해변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철책에는 ‘경고 군사작전지역 접근금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삼척항 북한 배 정박 이후 군 경계 철책 무용론 확산
183㎞ 중 52㎞ 군 철책 구간은 그대로 존치할 계획

 
기자가 다가가자 주민 권창일(88·여)씨는 “철책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미역을 따지도 못하고 그동안 너무 불편하게 살았다”며 “마을 서낭당도 철책 안에 있어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하루빨리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철책 안쪽에는 100m가량의 해변이 있다. 주민들은 철책 안쪽 해변에 자유롭게 들어가게 되면 미역과 해초 등 해조류 채취는 물론 다양한 어로 활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민 이수대(66)씨는 “삼척항에 북한 배가 아무런 제지도 없이 들어오는 마당에 일부 해안가에만 철책이 있어 뭐하냐”며 “주민 불편해소를 위해 하루빨리 철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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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갯마을 해변에 남아있는 군 경계 철책. 박진호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갯마을 해변에 남아있는 군 경계 철책. 박진호 기자

군 경계 철책 실효성 의문 갖는 이들 많아
삼척항에 정박한 북한 목선 사건 이후 강원 동해안에 남아있는 군 경계 철책이 눈총을 받고 있다. 해안 감시를 위해 쳐놓은 것인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군 경계 철책 일부가 남아있는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갯마을 해변도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곳이다. 해변 상당수가 군 경계 철책에 막혀 있어 관광지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해변 인근에서 만난 주민 정광영(38)씨는 “이제는 철책보다 신속한 신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복장이나 행동이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주민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기 때문”이라며 “남은 철책을 철거하고 관광지로 개발해 불빛이 많아지면 (북한 사람들이) 이쪽으로 들어올 엄두를 못 낼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강원도 삼척항으로 들어온 북한 목선. 당시 목선에는 북한 주민 4명이 타고 있었다. [사진 독자제공]

지난달 15일 강원도 삼척항으로 들어온 북한 목선. 당시 목선에는 북한 주민 4명이 타고 있었다. [사진 독자제공]

전방초소도 철거하는데 해안 철책 철거해야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연곡 해변에도 2.8㎞가량의 철책이 남아 있다. 캠핑장 바로 옆에 2m 높이의 철책이 있다. 캠핑장은 찾은 김관호(67·강원 춘천시)씨는 “전방 초소도 철거하는데 캠핑장 옆 철책을 그대로 놔둘 이유가 있냐”며 “보기 좋지 않다.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에 설치된 철책만이라도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환동해본부에 따르면 동해안 6개 시·군 해안에 설치된 군 경계 철책은 총 183.6㎞였다. 이 가운데 2017년까지 64.7㎞가 철거됐다. 이어 올 연말까지 27.3㎞를 추가로 철거하면 동해안 철책의 절반가량인 92㎞가 사라질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시·군은 안보 공백 최소화를 위한 대체감시장비 설치 등으로 아직 철거 작업을 시작도 못 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관계자는 “경계 철책 철거는 이달부터 시작해 오는 11월 중에 완료할 계획”이라며 “올해 철거되는 구간 외에도 앞으로 38.85㎞ 구간을 단계적으로 더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군 경계 철책이 남아있는 강원도 강동면 정동진 레일바이크 주변 해변. 박진호 기자

군 경계 철책이 남아있는 강원도 강동면 정동진 레일바이크 주변 해변. 박진호 기자

불편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안전망 남겨야
반면 일각에선 군 경계 철책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보와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2.2㎞ 구간에 군 경계 철책이 남아 있는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 레일바이크 탑승 현장에서 만난 김현자(55·여·강원 철원군)씨는 “해안 철책은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삼척항에 북한 배가 들어온 것을 계기로 해안 철책 철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역사나 교육적 가치 측면에서도 보존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정동진을 찾은 김정대(23·경기 파주시)씨 역시 “철책이 있는 게 불편할 수는 있지만, 아직 북한과의 관계가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만큼 철거보다는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도는 52.75㎞의 철책 구간은 그대로 존치할 계획이다. 이 구간은 국가·군사 중요시설, 산악지역, 해안 경계 취약지역 등 주민생활 불편과 상관없는 지역이다.
 
양양·강릉=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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