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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국회의원 되기보다 어렵다"…백종원 능가할 '서울상인' 발굴

중앙일보 2019.07.07 00:03
상품·광고·집객·대화 등 9개 분야에서 1명씩 선발… 글·영상으로 노하우 담은 콘텐트 만들어 배포
 
국내 최대 규모의 건어물 시장인 서울시 오장동의 중부시장을 찾은 오승훈 지역상권활력센터장. / 사진:김현동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건어물 시장인 서울시 오장동의 중부시장을 찾은 오승훈 지역상권활력센터장. / 사진:김현동 기자

“백종원씨가 인기 있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에요. ‘설탕·라면스프 팍팍 넣어유’라는 말이 ‘음식 까짓 거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죠. 대형마트와 경기 침체로 장사할 맛을 잃어가는 상인들에게도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해요. 그래서 ‘서울상인’을 뽑게 됐습니다.”
 
 
“국회의원 되기보다 어렵다”
오승훈 서울시 지역상권활력센터장은 지난해 ‘서울상인’ 사업을 시작했다. 침체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방자치단체 사업의 일환이다. 그는 “상인들에게 필요한 건 ‘장사 스킬’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인 동기와 희망”이라며 “상인이 변하면 시장도 변한다”고 말했다.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각종 기관에서 전통시장·골목상권 살리기 사업을 하지만 대부분 상인들 모아 앉혀놓고 강의하는 데 그쳤어요. 누구보다 장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인데 말이죠. ‘서울상인’은 교육보다는 상인계의 백종원을 뽑아 희망에 불을 붙일 거예요. 가까이 있는 롤 모델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죠.”
 
 
서울상인으로 선발되면 장사에 대한 노하우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울 지역 상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일을 하게 된다. 서울상인은 상점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9가지(경쟁력 있는 ‘상품’, 마음을 끄는 ‘광고’, 발길을 잡는 ‘집객’, 정이 오가는 ‘대화’, 안부를 묻는 ‘단골’, 시선을 끄는 ‘진열’, 장사의 기본 ‘청결’, 상생의 ‘상인정신’. 따뜻한 ‘직원 복지’) 분야로 나눠 1명씩 총 9명을 선발한다. “13만 명이 넘는 상인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선발 과정이 족히 6개월은 걸립니다. 평가 기준도 까다로워 ‘국회의원 되기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립니다. 9명을 뽑는 게 목표지만 해당 분야에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아예 뽑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해엔 1명만 선정했습니다.”
 
 
그가 꼽은 서울상인 자격은 세 가지다. 첫째, 자신만의 차별화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가. 둘째, 다른 상인에게 변화의 동기나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가. 마지막은 투철한 상인정신이 있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가다. 최초 후보는 각 권역별 상인회장이 자신의 시장에서 기준에 부합하다고 생각되는 상인을 최대 10명씩 추천한다. 이후 후보 인터뷰, 현장 검증, 전문가 심사 등 5단계 심사를 거쳐야 한다. 각 심사 과정에는 주변 상인, 경영컨설턴트, 시장 지원사업 관계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다. 여느 오디션 못지않다. 오 센터장은 선발 과정을 까다롭게 설정한 이유를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연구실험이 있습니다. 학급의 평균 성적을 높이기 위한 연구였는데, 하위권보다는 상위권 학생에게 집중해 교육했을 때 결과가 더 좋더군요. 잘하는 친구를 따라가려는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시장의 평균 성적(분위기)을 올릴 ‘공부(장사) 잘하는’ 서울상인을 발굴하는 일이니 그만큼 신중해야죠. 무엇보다 ‘낙하산’이 없도록 공평함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올해는 사업의 취지를 알리는 설명회부터 진행했다. “서울 네 개 권역에 있는 200여 개의 시장을 모두 돌며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각 상인회장에게 최대 10명까지 추천을 받았어요. 최초 후보자는 190명이었습니다.” 이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후보자가 있는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로 46명을 걸러냈고, 전원을 3시간씩 인터뷰했어요. 모든 과정은 영상, 기록지로 남겨 최종 심사 과정에서도 활용했습니다.”
 
 
인터뷰 기록지, 영상을 기반으로 전문가 토론·심사, 대국민 투표 등을 거쳐 최종 7명의 서울상인이 탄생했다. 지난해 선정된 ‘상품’ 분야를 제외한 데다 ‘직원복지’에선 아무도 뽑히지 못해 이번에도 9명이 완성되진 못했다. “사실 지난해 심사하는 과정에서 개선점이 발견됐어요. 당시에는 후보 한 명당 하나의 분야에만 추천되도록 제한했는데, 그러다 보니 엉뚱한 분야에 추천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실제로 이번에 ‘단골’ 분야에 뽑힌 강북종합시장 신흥마트의 이해룡씨가 그렇습니다. 지난해 ‘상품’ 분야에 후보로 올랐는데 사실 이분은 손님을 따뜻하게 배려하기로 유명하거든요.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한 후보 당 세 분야를 추천하게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해룡씨가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해룡씨는 심사 받는 내내 심사 관계자들로부터 “이 분이 계신 동네에 살고 싶다”는 평을 받은 상인이다. 오 센터장은 ‘동네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열쇠를 맡기고 독거노인 돌보기에도 앞장서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며칠째 안 보이는 노인분이 걱정돼 찾아갔더니 침대에 몸이 끼어 계셨대요. 빨리 발견한 덕에 목숨을 구했다는 미담을 들었습니다. 이해룡씨 외에도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장사하는 분들이 많아요. 서울상인을 선정하다 보면 이런 분들을 더 열심히 발굴해야겠다는 열정이 솟아나요.”
 
 
지난 5월엔 서울시청 신청사 다목적홀에서 서울상인으로 정식 임명되고 활동을 시작하는 ‘서울상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행사다. 행사에는 서울상인과 주변 상인들, 상인의 가족들이 참여했다. 오 센터장은 상인들이 누구보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상인들의 마음을 읽고 기획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장이 아니라 아들·딸·며느리 등 가족이 시상하도록 했습니다. 또 가족이 상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깜짝 영상편지도 준비했죠. 한마디로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웃음).”
 
 
베니스상인 못지 않은 서울상인 널리 알릴 계획
그에 따르면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한 명뿐이어서 잠시 활동을 보류했던 지난해 서울상인 김창선씨까지 합류해 총 8명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는 식의 활동은 거의 없다. 글이나 영상으로 서울상인의 노하우와 장사철학을 담은 콘텐트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이해룡씨는 분실물을 보관하는 일을 자처해 자연스럽게 손님을 가게로 끌어들였고, 정봉석씨는 과일을 기온이나 햇빛의 각도 등을 계산해 진열합니다. 또 그릇을 파는 진성자씨는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상품을 추천하기 위해 세 박스 분량의 제품 설명서를 통째로 외웠다고 합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과 연구 과정이 장사 노하우의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독자적인 진짜 노하우를 다른 상인들에게도 전파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업이 유명해지기보단 정감 넘치던 동네의 모습이 되살아나길 더 바란다고 말했다. “예전엔 ‘우리 동네가 좋은 이유’에 ‘동네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맛집이나 유명 백화점 등 사람보단 장소가 꼽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죠.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대화가 오가는 시장을 중심으로 다시 푸근한 동네가 되길 바랍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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