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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의 아베 ‘화이트 국가’서 한국 제외, 불량국가로 몰기?

중앙선데이 2019.07.06 00:45 643호 3면 지면보기
[뉴스분석] 징용 판결 보복, 한술 더 뜬 일본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강도가 날로 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모습. [EPA=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강도가 날로 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모습. [EPA=연합뉴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초유의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1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핵심 소재 세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를 예고하고 4일 실시에 들어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이 그동안 포괄적 허가 대상이었으나 앞으로는 개별 심사를 밟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 레지스트는 일본이 세계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불화수소도 약 70%를 일본이 만든다. 이 세 가지 소재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공급선이 제한적이어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이 될 수 있다.
 

일본, 공청회 등 거쳐 내달 결정
전략물자 통제 핑계로 압박 나서
한·일 관계 최악까지 각오한 듯

IS·이란 같은 나라로 국제 낙인 땐
한국 원자력·방위산업도 치명타
한·미 동맹 균열까지 노렸을 수도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조치가 수출 관리 규정을 고쳐 한국을 이들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일명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일본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과 재료를 위험 국가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안보 위험이나 제3국 전용 우려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 명단에 포함해 제한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일본이 안보 등의 문제를 이유로 무역을 규제하는 수많은 제품 중에서 이 세 가지만 우선 제외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4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현재 27개국인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아예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4일까지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8월 중 정령(政令)을 개정해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한국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국가신뢰도에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가 레이와(令和) 원년 5월, 즉 올해 5월에 작성한 ‘안전보장 무역관리에 대하여’라는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는 선진국이 보유한 고도의 기술과 관련 물질이 대량파괴무기(핵무기·화학무기·생물무기·미사일)와 통상무기의 개발·제조·사용·저장 등을 하려는 국가에 넘어가 국제적인 위협이 되고 지역과 글로벌 정세를 불안정화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와 절삭에 사용되는 공작기계는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 금속 도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의 경우 화학무기 원료가 될 수 있다. 탄소섬유는 민간에선 항공기 구조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만 군사용으로는 미사일의 구조재로로 쓴다. 보고서는 이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 선진국 중심으로 국제적인 규범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일본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재료와 부품 목록을 만들고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서방국가에 대해선 ‘화이트 국가’로 분류해 심사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말이 군사적 전용 우려가 있는 자료와 부품이지 실질적으론 일본이 자랑하는 대부분의 고품질 재료와 부품이 망라돼 있다.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심사를 받게 된다. 심사에 걸리는 시간도 예사 일이 아니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필요한 재료와 부품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중요도에 비해 소요 물량이 적어 자체 개발할 경우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번 조치가 한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고 양보를 기대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는 그야말로 한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오기를 보여주고 있다.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한국은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불량국가’ 대접을 받게 된다. ‘안전보장 무역관리’ 보고서는 ‘안전보장을 둘러싼 과제의 심각화 사례’로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이란,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일본의 조치는 한국을 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원자력이나 미사일, 비행기 부품이나 재료 등까지 포함해 한국을 수출 규제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한국은 주요 에너지원인 원자력과 방위산업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징용공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 수준을 넘어 남북한 접근에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고. 한·미 동맹의 균열까지 노린 것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단순히 오는 7월 2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승리만 노리는 게 아닐 수 있다. 한국 때리기는 일본 내에선 올해 안으로 예상되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의 개헌에도 힘이 될 수 있다. 개헌은 아베의 필생의 소원이었다. 더 나아가 일본의 동북아시아와 글로벌 세계에서의 주도권 향상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아베의 그랜드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북한·중국·러시아·이란과 중동 테러조직에 일본산 전략 물자가 가지 않도록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나라 수준으로 대접받게 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비수를 내밀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이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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