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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실리 우선, 순혈주의 타파로 신사업 가속화

중앙일보 2019.07.06 00:03
스마트폰 국내 생산 중지 결단력 발휘… LG화학·LG디스플레이 수익성 개선 시급

취임 1주년 맞은 구광모 LG 회장 성과와 과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이 서울 강서구에 있는 R&D 클러스터 ‘LG사이언스파크’에서 직원과 함께 OLED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구 회장은 6월 29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 사진:LG그룹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이 서울 강서구에 있는 R&D 클러스터 ‘LG사이언스파크’에서 직원과 함께 OLED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구 회장은 6월 29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 사진:LG그룹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6월 29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구 회장은 지난해 타계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장자이자 가문의 4세로 경영권을 승계했다. 특히 1978년생인 그는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재계 4위 대기업 총수 자리에 올라 안팎에서 기대감과 우려감이 교차했다. 젊은 감각으로 신사업 개척 등을 잘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 이면에선, 경쟁 중인 국내외 유수의 기업 리더들에 비해 연륜에서 뒤처져 초반 고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감도 존재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평가는 어떨까. 당초의 우려감은 줄어든 반면 기대감은 더해가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의 1년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며 “그룹에 여러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수완 또한 만만찮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젊은 총수답게 ‘실리’를 중시하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점이 긍정적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 LG전자 스마트폰의 국내(경기도 평택) 생산 중단을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으로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이전해 가격 경쟁력을 키우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공세’에 맞선다는 것이다. 공장 이전 작업이 진행되면서 국내 제조부서 인원 수백명은 희망퇴직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돼 자칫하면 그룹 구성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다. 구 회장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실리주의가 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지였으며, 본격적인 해외 이전 효과가 오는 4분기 실적부터 반영될 것”으로 예측했다.
 
경영진 영입해 성과주의 강조
구 회장의 실리 추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LG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됐던 ‘순혈주의’ 타파도 그가 내고 있는 성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구 회장은 LG화학 최고경영자(CEO)에 외부 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임명했다. 신 부회장은 글로벌 첨단소재 기업 3M(한국지사)의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으로 일한 바 있다. LG화학이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립 이후 7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써 중후장대 업종에 속한 이 회사 특성상 역동성을 갖기보다 현재에 안주하기 쉬운 리스크를 덜고, 사업 다각화와 장기 성장성 확보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구 회장은 또 자신의 오른팔 역할을 할 ㈜LG 경영전략팀장으로 다국적 컨설팅 전문 업체 베인앤컴퍼니의 한국법인 대표를 역임했던 홍범식 사장을 영입했다.
 
지금껏 LG그룹은 내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고, 일부 저(低)성과에도 이들에게 비교적 오랜 기간 기회를 주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순혈주의는 제조업 패러다임의 변화로 한층 빠른 의사결정과 전략 수정이 중요해진 21세기에 독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면에서 구 회장의 최근 파격 인사는 LG그룹에 ‘성과주의’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실익이라는 이점을 안길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비주력 사업의 과감한 정리다. 구 회장은 LG디스플레이의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정리하고, 2012년부터 5000억원가량을 투자해 키우던 연료전지 부문 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의 청산을 결정했다. 둘 다 기대치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던 분야였다. LG전자의 수(水)처리 부문 자회사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 매각 역시 진행 중이다.
 
이렇게 절감한 비용, 그리고 35% 이상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 LG CNS(㈜LG의 시스템·통합 부문 계열사)로부터 얻게 되는 비용으로는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과 자동차 전장, 로봇 같은 신사업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예상된다. 유학 시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관련 스타트업 두 곳에 몸담았던 구 회장이 경험을 살려 신기술 연구·개발(R&D)과 응용을 지휘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룹 내 전자부품 제조사인 LG이노텍도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같은 차세대 기술 구현에 관여하는 3차원(3D) 센싱 모듈로 최근 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유플러스가 구 회장의 진두지휘로 국내 케이블TV 1위 기업 CJ헬로 인수를 추진 중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SK텔레콤·KT까지 3사 간 출혈 경쟁이 격화해 타개책 마련이 급한 상황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트 공룡의 막강한 위력으로 급변 중인 유료 방송 시장에 대응하고, IPTV 가입자를 확대해 새 활로를 뚫는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경영 행보 속에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별로 탄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내실이 눈에 띄게 좋아진 LG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7033억원으로 2년 전(1조3378억원)의 배로 늘었다. 올해는 이보다도 증가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LG화학은 외형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28조1830억원의 매출로 2016년(20조6593억원)과 2017년(25조6980억원)에 이어 사세를 한층 키웠다. LG생활건강도 꾸준하다. 지난해 매출 6조7475억원, 영업이익은 1조393억원으로 각각 전년(매출 6조1051억원, 영업이익 9300억원)보다 무난하게 증가했다.
 
다만 구 회장 앞에는 과제도 만만찮게 쌓여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생산라인 이전을 통한 비용 효율화 외에 추가 ‘특효약’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절박하다. 그룹 내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부는 최근까지 1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LG전자는 자동차 전장에서도 내실 강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LG전자 전장(VS) 사업부 매출은 2015년 1조8324억원에서 지난해 4조2876억원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아직 연간 1000억원대 영업손실(지난해 -1198억원)이 나고 있어 흑자 전환이 시급하다. 구 회장은 내년 하반기쯤 영업이익을 본격적으로 올린다는 방침 아래 속도전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형 성장에도 적자 여전한 전장 사업
구 회장(아래 세 번째)과 LG그룹 직원들. / 사진:LG그룹

구 회장(아래 세 번째)과 LG그룹 직원들. / 사진:LG그룹

LG화학 쪽도 사정이 복잡하다. 거듭된 외형 성장에도 수익성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 고민거리다. LG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2461억원으로 전년(2조9285억원) 대비 크게 감소해 영업이익률이 11.40%에서 7.97%로 떨어졌다. 구 회장이 순혈주의 타파 기조를 내세우면서 신학철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급히 ‘수혈’한 이유다. 야심차게 진행 중인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서 국내외 경쟁이 격화한 데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원재료 가격 상승 등 외부 악재를 만나 고전 중이라는 분석이다. LG디스플레이는 좀 더 사정이 안 좋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929억원으로 전년(2조4616억원) 대비 급감하는 ‘어닝 쇼크’를 겪었던 LG디스플레이는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올 1분기에 이미 적자가 났던 이 회사는 2분기에도 2800억원대의 적자가 추가 발생할 전망이다.
 
기존에 수익을 책임졌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한 가운데, OLED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느라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 중국의 맹공 속에 가격 경쟁력 개선 필요성도 커졌다. 어규진 이베스트주자증권 연구원은 “미래 가치 측면에서 OLED를 향한 LG디스플레이의 방향 전환은 긍정적”이라며 “힘든 시기를 견뎌내는 게 중요하며, 중국 광저우의 신규 OLED TV 생산라인 가동 영향으로 이르면 올 4분기 이후 점진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밖에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서 미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제재 대상이 된 중국 화웨이의 장비를 쓰고 있어 난처해진 LG유플러스의 딜레마 해결도 구 회장의 리더십에 달렸다.
 
구본무 회장 빼닮은 구광모 회장 - 권위 내세우지 않고 소탈하게 소통
구광모 회장은 1년간 부친(고 구본무 전 회장)을 빼닮은 소탈한 성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최대한 탈권위적인 자세로 직원들과의 소통에 임하면서 호평 받았다. 권위적인 태도로 심한 경우 ‘갑질’ 논란까지 일으켰던 재계 일부 젊은 리더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따로 취임식을 열지 않은 것과 함께 그룹 내에서 자신을 ‘회장’ 대신 ‘대표’로 칭해달라고 먼저 청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LG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된 지 11개월 만인 지난 5월이 돼서야 부친이 쓰던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내 회장 집무실로 자신의 짐을 옮겼다. 이전까지는 부친을 추모하는 의미로 이 집무실을 그대로 보존한 채 바로 옆방에서 집무했다.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도 서울 강서구에 있는 R&D 클러스터 ‘LG사이언스파크’부터 선택, 일반 직원들과 만나 직접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초 시무식에서는 임직원들이 정장 대신 비즈니스캐주얼 차림으로 참석해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소통할 수 있도록 방식을 바꿨다. 이미 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그룹 내 대부분의 계열사 직원들은 지난해 9월부터 출근 복장이 사실상 완전 자율화됐다. 이전까지는 주 1회 시행이었지만 구 회장 취임 이후 모든 근무일로 확대된 셈이다. 분기별로 400명이 모여 회장의 경영 메시지를 전달받던 임원 세미나는 100명 미만의 임원이 매월 모여 자유로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전환(LG포럼)했다. 역시 구 회장의 소탈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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