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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썸타는 경제]'창고에만 쌓이네'…위기의 한국車

중앙일보 2019.07.05 16:25
현대차의 완성차 공장이 들어설 광주에 위치한 기아차 광주 2공장 생산 라인 모습. [뉴스1]

현대차의 완성차 공장이 들어설 광주에 위치한 기아차 광주 2공장 생산 라인 모습. [뉴스1]

재고손실 2년간 1000억 반영한 한국GM…공장 철수로 이어져 
지난해 군산공장 철수 사태로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던 한국GM. 이 회사는 지난 2014년부터 5년 연속 영업적자에 시달렸다. 생산한 차량이 팔리지 않아 매출액도 줄었지만, 창고에 쌓이는 재고품을 처리할 방도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군산공장 철수는 이런 재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다. 한국GM 회계장부를 보면 2016년 재고자산은 1조1817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7084억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2년 새 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재고품을 '떨이'로 팔거나 오롯이 손실(2년간 1043억원)로 반영했다. 한국GM 사태는 창고에 차가 쌓이는 현상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좋은 일자리 제조기'였던 한국 자동차 산업이 경고음을 내고 있다. 위기 신호를 알리는 경고등 중 하나가 재무제표 상의 '재고자산'이다. 먹은 음식이 에너지로 소비되지 않고 '뱃살'로 쌓이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듯, 제품이 창고에 쌓이는 정도가 심해지면 '지방 흡입'과 같은 구조조정 상황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현대차 작년 재고품 판매 속도, 금융위기 때보다 나빠 
중앙일보가 현대·기아차의 11년치(2008~2018년) 회계장부에 나타난 재고자산 증감과 재고자산회전율(매출액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값)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현대차의 재고자산 관련 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고 기아차도 최근 들어 지표가 나빠졌다. 재고자산회전율은 창고에 쌓인 제품이 팔려 매출액으로 인식되는 속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적정한 재고자산회전율이 얼마인지는 기업·업종마다 다르지만, 한 기업의 회전율을 시간 순으로 놓고 비교해보면 기업의 위기 징후도 파악해 볼 수 있다.
 
현대차의 재고자산회전율은 2008년 17.8로 떨어졌다가 이후부터 오르기 시작, 2012년 정점(25.4)을 찍었다. 그러다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5.1까지 내려왔다. 갓 생산된 자동차가 창고에 있다가 시장에 내다 팔리는 속도가 금융위기 때보다 지난해에 더 느려졌다는 의미다. 재고품이 창고에 쌓이면 창고 보관료나 보험료·인건비 등 비용도 들지만, 제품을 '떨이'로 팔아야 하는 데 따른 손실을 보게 된다. 5000만원짜리 차가 4000만원에도 겨우 팔리는 상황이 되면 재무제표에 기록하는 재고자산 가치도 그만큼 하락한다. 이렇게 떨어진 가치는 '재고자산평가손실'이란 항목으로 기록하게 된다.
 
'떨이'로라도 팔리면 다행이지만, 계속 창고에서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면 유행이 지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를 회계 용어로 '진부화'된다고 한다. 진부한 이야기처럼 상품도 진부해지는 것이다. 아예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만큼 구형이 되면 재고자산 가치는 '0원'이 될 수도 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현대자동차 경북 칠곡 출고센터에는 차가 안 팔려 출고 대기 중인 차량들로 가득했다. [중앙일보DB]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현대자동차 경북 칠곡 출고센터에는 차가 안 팔려 출고 대기 중인 차량들로 가득했다. [중앙일보DB]

R&D 중요해진 현대·기아차…설비투자 압박, 위기 키울것 
현대·기아차의 재고자산이 증가한 지금은 시장에 팔릴만한 차세대·친환경 차량 연구개발(R&D)이 중요해진 시기다. 정부의 일자리 확대 시책에 부응해 기존 모델을 생산하는 설비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란 의미다. 창고에 차가 쌓인 상태에서 정부가 설비투자 확대를 압박하면 위기는 더 커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재고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조만간 수익성이 떨어지는 그룹 내 계열회사 등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신용평가사들도 현대·기아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지금은 AAA(현대차)·AA+(기아차) 등급으로 우량한 편이지만, 앞으로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본시장에서 평가하는 올해 상반기 신용평가전문가설문(SRE)에서도 회사채 시장전문가 4명중 1명(응답자 180명중 45명)이 현대·기아차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최재호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현대·기아차는 부진한 사업 실적이 계속되거나 경쟁력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면 신용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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