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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요청에 英해군 유조선 억류"…유럽과 '이란 핵합의'도 파국 위기

중앙일보 2019.07.05 15:19
영국 국방부가 공개한 유조선 억류 작전 모습. 왼쪽 위에 영국 해군이 탄 헬기가 보인다. [EPA=연합뉴스]

영국 국방부가 공개한 유조선 억류 작전 모습. 왼쪽 위에 영국 해군이 탄 헬기가 보인다. [EPA=연합뉴스]

핵 합의에서 탈퇴한 미국과 우라늄 농축도 상한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란 간 갈등 와중에 지브롤터 해역에서 영국 해군이 대형 유조선을 억류했다. 이란산 원유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인 시리아로 운반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영국에 억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6일(현지시간)을 유럽의 핵 합의 유지 의지를 판단할 시한으로 정했는데, 이를 코앞에 두고 미국과 영국이 얽힌 유조선 억류 변수가 터진 것이다. 이란 핵 합의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브롤터해역서 '그레이스1' 헬기로 억류
이란서 남아프리카 돌아 시리아행 특이
이란 "영국의 미국 따라하기, 해적 행위"
유럽에 준 시한 6일 끝…핵합의 변수로

 영국령 지브롤터는 원유를 싣고 지중해로 향하던 파나마 선적 초대형 유조선 ‘그레이스1’호를 억류했다고 4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보도했다. 지브롤터 남쪽 4㎞ 해역에서 영국 해군이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 억류했다. 고속정도 동원됐다. BBC는 영국 해군 30명과 지브롤터 경찰 및 세관 당국이 참여했으며, 억류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급파된 해군 대원들이 초대형 유조선을 억류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영국에서 급파된 해군 대원들이 초대형 유조선을 억류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억류된 유조선은 길이 330m 크기다. 파비안 피카도 지브롤터 행정 수반은 “그레이스 1이 이란산 원유를 싣고 시리아 지중해 연안의 바니아스 정유공장으로 운반 중이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장은 EU의 시리아 제재 대상인 기업 소유”라고 덧붙였다. EU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가 반인권적 행위를 한다며 2011년부터 제재를 적용 중이다. EU는 해당 정유공장이 시리아 정부 산하 자회사여서 알아사드 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고 본다.
 
지브롤터 등은 특히 그레이스1의 항로에 주목하고 있다. 이 유조선은 추적 결과 이란을 출발해 남아프리카를 돌아 지중해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를 실은 선박들이 걸프 해역에서 지중해로 가려면 보통 지름길인 스웨즈 운하를 거친다. 스웨즈 운하가 좁아 초대형 유조선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운반비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시리아로 가려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게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지브롤터 해역에서 영국 해군 등에 억류된 그레이스1호. 이란 원유를 싣고 시리아로 가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브롤터 해역에서 영국 해군 등에 억류된 그레이스1호. 이란 원유를 싣고 시리아로 가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조치는 중요한 자원이 ‘살인 정권'인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공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브롤터의 소유권을 놓고 논란 중인 스페인의 호세프 외무장관은 언론에 해당 유조선의 억류가 미국이 영국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개입설이 나오자 이란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란 외무부는 성명에서 “불법 억류"라고 주장하면서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현지 채널2 방송 인터뷰에서 “억류는 법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해적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이 미국의 대이란 적대 정책을 따르는 것을 이란 정부와 국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에게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에게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EPA=연합뉴스]

 
 이번 억류는 이란이 핵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영국ㆍ프랑스ㆍ독일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일어났다.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합의를 탈퇴한 이후 경제적 압박을 받아왔는데, 미국이 원유 수출을 막은 게 치명타였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은 이란의 원유 수출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 측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에 따라 영국이 나선 것이라고 보고 있어 향후 핵 합의를 유지하려는 유럽의 노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 이란은 영국의 유조선 억류는 불법이며, 영국이 미국의 정책에 따르는 것은 이란 핵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의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AP=연합뉴스]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 이란은 영국의 유조선 억류는 불법이며, 영국이 미국의 정책에 따르는 것은 이란 핵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의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AP=연합뉴스]

 이란이 핵 합의에 따른 우라늄 농축도 상한(3.67%)을 지키지 않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억류 사건이 터진 것도 긴장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AFP 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지난달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유조선 두 대에 대한 폭발물 공격이 이란 소행이라고 비난했고,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이후 미국 정찰 드론이 이란군에 의해 격추되기도 했다. 걸프 해역에 병력을 파견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입장을 밝히면서 양측은 막말을 주고받아왔다.
 
유조선 억류 작전에 참여한 고속정 [EPA=연합뉴스]

유조선 억류 작전에 참여한 고속정 [EPA=연합뉴스]

 런던=김성탁 특파원, 강혜란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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