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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부부의 경계선, 우린 서로 지키고 있나요

중앙일보 2019.07.05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52)
집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하다며 소파에 눕는 남편과 달리, 나는 쌓여 있는 집안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왜 남편처럼 눕지 못하고 일부터 하려고 하나 생각하니 괜히 심술이 난다. [사진 영화 브레이크업-이별후애 스틸]

집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하다며 소파에 눕는 남편과 달리, 나는 쌓여 있는 집안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왜 남편처럼 눕지 못하고 일부터 하려고 하나 생각하니 괜히 심술이 난다. [사진 영화 브레이크업-이별후애 스틸]

 
외국 출장을 앞둔 남편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온종일 외부에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들어온 주말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피곤하다며 소파에 눕습니다. 종일 함께 다닌 저도 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보다 제 눈에는 자기 전에 정리해야 할 집안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왜 같은 상황에서 나는 남편처럼 눕지 못하고 집안일이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인가 생각하며 괜히 심술이 납니다. 남편 눈에는 집에 도착해선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왔다 갔다 분주한 제가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동안 누워있던 남편은 먼저 씻겠냐고 묻습니다. 바닥을 물걸레질하며 약이 오른 제 입에서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죠. 한 톤 올라간 목소리와 곱지 않은 뉘앙스로 “내가 지금 씻게 생겼어?”라는 한 마디가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뭐 이렇게까지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과 왜 우린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밤이 깊어갑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며 습도를 이기지 못한 선인장이 흉물스럽게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일어난 남편은 꽤 큰 크기의 선인장을 작은 크기로 자르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귀찮을 수 있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해주는 남편을 보면서 불편한 맘으로 잠들었던 어젯밤이 다시 떠오릅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부부 사이에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의 함정에 자꾸 빠진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불가사의 관계라고 말한다. [사진 pxhere]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부부 사이에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의 함정에 자꾸 빠진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불가사의 관계라고 말한다. [사진 pxhere]

 
문득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한 장면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한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부부로 추자연, 우효광 부부가 등장했죠. 오랜만에 출연해 모니터 속 본인의 모습을 들여다보던 추자현은 영상을 보며 문득 느끼는 게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다시 보다 보니 평소 인식하지 못한 본인의 말과 행동에 놀라게 된다고 말입니다.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부부 사이에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의 함정에 자꾸 빠집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는 ‘건강한 가족이 되는 비밀’이라는 강연에서 행복한 가족관계를 위한 4가지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강연을 시작하며 가족은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불가사의한 관계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말해왔듯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관계라는 거죠. 그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가 하는 가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먼저 말합니다.
 
먼저 가족에 대한 오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가족관계는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가족은 노력할 필요가 없는 관계다. 가족끼리는 감정을 다 표현해도 된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치가 커도 된다는 생각이죠.
 
이런 오해가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의 바탕이 되어 있으면 서로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다른 관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관계인 셈이죠. 그러나 가족에 대한 진실은 오해와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가족은 복잡한 관계이다, 가족은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 관계이다, 가족도 감정의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족관계에서도 합리적인 기대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4가지 L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가족 간에 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4가지 L을 전합니다.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1. 사랑(Love)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란 전제가 꼭 필요합니다. 많은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가족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단 하나라는 것을 확인한다고 합니다. “나를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것이죠. 사회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공간이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사랑이 필요한 관계인 것이죠.
 
2. 경계선을 인정하는 것(Limits)
가족 사이에도 해서는 안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 느슨한 간섭(Loose Integration)
경계선을 인정했다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 지켜봐 주는 겁니다. 서로 죄책감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가족이 그 결정을 서로 격려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4. 정신적 독립과 이별(Let Them Go)
가족은 두 원의 완벽한 결합이 아닌 겹치는 교집합의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겁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권리가 가족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에서 "너 때문에 못 살겠다"로 바뀌곤 한다. 혹시 내 경계선은 지켜지길 바라면서 상대방의 경계선은 쉽게 넘나들고 있지는 않은가? [사진 pixabay]

부부가 살다 보면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에서 "너 때문에 못 살겠다"로 바뀌곤 한다. 혹시 내 경계선은 지켜지길 바라면서 상대방의 경계선은 쉽게 넘나들고 있지는 않은가? [사진 pixabay]

양창순 대표의 말에서 저는 경계선을 인정하자는 말이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가족상담에서도 경계선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전적인 설명으로는 가족원 개인과 하위체계의 안팎을 구분하는 테두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족 사이의 허용되는 접촉의 양과 유형을 규정합니다.
 
경직된 경계선은 가족이지만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의 지나치게 독립적인 태도로 서로를 대합니다. 반면 너무 밀착된 경계선은 ‘너의 일은 모두 나의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가장 기능적인 가족은 명확한 경계선을 가진 경우겠죠.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필요한 때는 서로를 위해 협동하고 지지하며 서로의 사람에 관여합니다. 가족의 경계선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하자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혹시 내 경계선은 지켜지길 바라면서 상대방의 경계선은 끊임없이 넘나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서 결혼을 결심하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면서 남은 인생을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들 말합니다. 신혼 초기의 밀착된 경계선을 지나 시간이 지나며 나의 욕구나 정서적 지지 등을 받지 못하면서 부부 사이는 소원해집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경직된 경계 선상에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어느 경계선에 서 있을까요?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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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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