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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커플에 폐병 환자… 집 주인은 쇼팽을 바로 쫒아냈다

중앙일보 2019.07.05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31)
바람의 집 (Son Vent). 쇼팽과 상드 일행이 보름가량 머물렀던 농장에 딸린 별장. 상드의 아들 모리스 그림. 1842.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바람의 집 (Son Vent). 쇼팽과 상드 일행이 보름가량 머물렀던 농장에 딸린 별장. 상드의 아들 모리스 그림. 1842.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상드는 이탈리아로 가려다 마요르카로 행선지를 바꾸었는데 친구 마를리아니 부부의 추천 때문인 것 같다. 남편 마누엘 마를리아니는 마요르카에서 영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쇼팽과 상드는 온화한 지중해의 섬에서 편안한 휴식을 기대했다. 두 아이와 같이 갔지만 허니문의 낭만도 맛보고 싶었을 것이다.
 
11월 8일 팔마에 도착하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한낮에는 따뜻함마저 느껴졌고 공기는 맑았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들은 보석같이 빛났다. 습기와 추위는 건강을 위해 쇼팽이 피해야 할 것들이었다. 공기는 건조했고 부드러운 바람은 몸과 마음을 풀어놓았다. 쇼팽은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스페인 본토의 전쟁은 지중해의 섬까지 영향을 미쳐 그곳은 어수선했다. 조그만 팔마 시는 전쟁을 피해 육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당장 숙소를 구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마를리아니 씨가 써준 추천장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세 들어갈 방은 시내에 없었다.
 
주민들이 보기에 그들 일행은 수상했다. 여자는 뒤드방 ‘부인’이라 했고 남자는 ‘미스터’ 쇼팽이라 했다. 그것은 그 둘이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아이는 둘이 딸려있었다. 여자는 남자 옷을 입고 있었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워댔다. 기침이 심한 남자는 여자처럼 창백했다. 배타적인 섬 사람들에게 그들 일행은 기묘하게 보였고, 때문에 주민들이 그들을 꺼려서 방을 얻기 어려웠다는 얘기도 있다.
 
해안가의 술통제작 작업실의 2층에 짐을 내려놓고 일주일을 찾아다닌 끝에 팔마 시에서 좀 떨어진 농장에 딸린 별장을 찾아냈다. ‘바람의 집’이라고 불렸던 그곳은 버려진 곳으로 잡초가 우거졌지만, 그럭저럭 머물 수는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쇼팽은 종려나무, 선인장, 올리브 나무, 오렌지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석류나무 속에 둘러싸여 햇살을 받았다.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주문한 플레옐 피아노는 도착하지 않았기에 시내에서 낡은 피아노를 하나 빌렸다. 쇼팽은 피아노에 앉아 있었고 상드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까지 걸어갔다가는 돌아왔다. 쇼팽은 폰타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다 빛깔과 햇빛, 공기에 관해 얘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이지. [….] 더없이 아름다운 것들과 가까이 있으니, 몸도 나아졌어”
 
발데모사의 카르투시안 수도원 전경. [사진 Wikimedia Commons (Under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발데모사의 카르투시안 수도원 전경. [사진 Wikimedia Commons (Under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마법에 걸린 듯이 모든 것이 바뀌었고 일행은 어리둥절해졌다. 마요르카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상드는 몰랐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찬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창과 문은 부실했다. 강풍은 그침 없이 ‘바람의 집’ 안까지 들어왔다. 난방은 없었고 냉기에 건강한 상드조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쇼팽은 기침을 시작했고 그는 바로 앓아누웠다. 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의사 3명이 다녀갔다. 모두 그의 병을 폐결핵이라고 진단했다. 첫 번째 의사는 그가 죽을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의사는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고, 세 번째 의사는 그가 이미 죽은 몸이라 했다.
 
의사들의 방문은 병의 치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고 쇼팽의 병만 널리 알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규정에 따라 의사들은 결핵을 앓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를 당국에 신고했다. 전염병인 결핵은 당시 치료의 길이 없었고, 나병과 같이 취급되었다. 사람들은 결핵환자나 나병 환자는 절대 멀리하려 했다.
 
집주인 고메즈는 불치의 전염병 환자가 있는 일행을 즉각 쫓아냈다. 그리고 감염이 의심되는 모든 가구를 태우고 그 비용을 청구했다. 폐병 환자에 대한 소문은 빨리 퍼졌고 주민들은 누구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병자를 데리고 야산에 나 앉을 운명이었다. 상드는 프랑스 영사관에 도움을 청하여 의탁했다.
 
며칠 후 그녀는 미리 보아두었던 산 너머 발데모사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은 버려진 곳으로 수도승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외떨어진 그곳은 가는 길이 비가 오면 잠기거나 끊어지는 곳이었다. 상 중턱의 수도원은 맑은 날에는 경치가 좋았다. 그러나 자주 짙은 안개가 끼었고 빛도 잘 들지 않았다. 방은 냉기로 썰렁했고 습기 먹은 외풍도 심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잦은 비와 습기 그리고 찬 바람은 쇼팽에게 치명적이었다. 병이 낫질 않았다. 안개가 한번 내리면 대낮에도 복도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쇼팽은 관같이 생긴 수도원의 어두침침한 방과, 말을 하면 마치 귀신이 그 말을 흉내 내듯이, 소리가 울리는 수도원의 벽과 복도를 무서워했다. 그는 혼자 있으려 하지 않았고 혼자 있으면 안절부절못했다.
 
피아노가 발데모사 수도원에 도착하자 포장을 뜯고 쇼팽은 시험 삼아 연주를 했다. 당시 15세였던 상드의 아들 모리스는 그 순간을 스케치로 남겼다.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고 상드와 모리스, 솔랑주 그리고 피아노를 날랐을 마을 사람들도 몰려들어 쇼팽의 연주를 듣고 있다. 그림 아래에 ‘발데모사, 1839년 1월’이라고 적혀있다. [사진 송동섭]

피아노가 발데모사 수도원에 도착하자 포장을 뜯고 쇼팽은 시험 삼아 연주를 했다. 당시 15세였던 상드의 아들 모리스는 그 순간을 스케치로 남겼다.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고 상드와 모리스, 솔랑주 그리고 피아노를 날랐을 마을 사람들도 몰려들어 쇼팽의 연주를 듣고 있다. 그림 아래에 ‘발데모사, 1839년 1월’이라고 적혀있다. [사진 송동섭]

 
플레옐 피아노는 12월 20일 팔마에 도착했다. 쇼팽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한몫 잡으려는 세관원은 까다롭게 굴었다. 세관을 통관하는데 엄청난 돈이 요구되었다. 2주간에 걸친 실랑이 끝에 처음 요구하던 돈의 반인 300프랑을 내고 피아노를 가져왔다. 변변치 않은 길을 따라 피아노를 수도원까지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아노를 수도원으로 운반하는데 또 관세의 반 이상의 비용이 들었고 일주일이나 걸렸다. 피아노가 도착하자, 쇼팽은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깨어있는 시간은 피아노에서 보냈다. 열악한 환경과 쇠약한 건강상태에서도 쇼팽의 창작욕이 돌아왔다. 쇼팽은 머릿속에 구상 중이던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상드에게 시간은 정신없이 지났다. 긴 여행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왔다. 섬에 도착하고 곧이어 방을 구하러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고, 낡은 피아노를 찾아 빌려야 했다. 갑자기 닥친 추위에 자신도 떨며 병든 쇼팽을 치료할 의사를 찾아 데려와야 했고, 느닷없이 세 든 집에서 쫓겨나오면서 아이들과 병자를 챙기고 급히 다른 거주 장소를 찾아야 했다. 세든 주인이 태운 가구비용을 청구 당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도 견뎌야 했다.
 
거기에 더하여 플레옐 피아노를 들여오기 위해 2주간이나 세관원과 신경전을 벌이고 난 후 그 피아노를 산 너머 수도원까지 옮기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을 낯선 곳에서 악천후 속에 상드가 해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쇼팽 일행에 대한 소문은 팔마에서 발데모사까지 흘러 왔다. 발데모사 주민들도 팔마의 주민처럼 그들 일행을 경계했고 나아가 작당해서 쇼팽 일행을 따돌렸다.
 
하지만 상드는 특유의 긍정적이고 낙관적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쇼팽을 돌보아 그가 음악에 전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애를 썼다. 허약한 아들 모리스를 챙겼고 고집 센 딸 솔랑주를 달래며, 둘을 교육했고 그 위에 신문사에 약속된 원고도 썼다. 상드는 식구들을 재우고 밤을 새워 자기 일을 했다. 이것은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했다.
 
쇼팽과 상드 일행을 따돌리는 주민. [그림 발데모사의 카르투시안 수도원에 마련된 쇼팽과 상드 기념관 2실 소장]

쇼팽과 상드 일행을 따돌리는 주민. [그림 발데모사의 카르투시안 수도원에 마련된 쇼팽과 상드 기념관 2실 소장]

 
지역 주임 신부는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그들 일행을 싫어했다. 특히 그들의 대표자, 상드에 대해 ‘죄 많은’여인이라고 대 놓고 비난했다. 불륜 커플이 분명한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이상하게 보였다. 미사가 열릴 때쯤이면 그들 쪽으로 조개 껍질로 된 확성기를 돌려놓고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고, 알아들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의 따돌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생필품, 무엇보다 식량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남자 복장을 하고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담배 피우는 상드는 누가 보아도 특이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예 상대를 안 하려 했다. 음식물을 사러 마을에 오면 피하거나 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불렀다.
 
생선, 채소, 달걀, 신선한 고기, 모두 구하기가 힘들었다. 멀리 떨어진 프랑스 영사관의 도움이 없었으면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팔마에서 식료품이 담긴 가방이 도착하면 상드는 기뻐서 뛸 정도였다. 고상한 환경에서 자란 쇼팽은 현지 음식을 싫어하며 까탈을 부렸다. 그녀의 체력과 정신의 소모는 극에 달했다. 힘겨운 상드는 예민해졌다. 수프에 후추가 많이 들어갔다고 짜증을 냈고, 하인이 음식을 빼돌릴 때도 참지 못했다.
 
찬 공기와 습기에 쇼팽의 병은 심해져서 각혈을 계속했다. 모든 것이 상드를 코너로 몰았다. 상드는 이미 “이번 여행은 모든 면에서 끔찍한 실패이다”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다음 편에서는 마요르카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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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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