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200명 올린 VIP용 'A정보'···경찰청장은 여기에 명운 걸었다

중앙일보 2019.07.05 10:12
 “대응방안을 작성해주세요. 청와대에서 관심이 아주 큽니다. 경찰청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에게 이 말은 ‘마법’이었다. 선거철이 되면 여당에 유리하도록 선거 판세를 분석해 보고했고, 반대 세력은 견제하는 방안을 작성해 올렸다. 정치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경찰이 왜 위법의 소지를 무릅쓰고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이런 일을 주도해 재판에 넘겨진 강신명ㆍ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의 공소장에는 정보경찰이 이렇게 청와대 보고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드러난다.

 
박근혜정부 시절 정보경찰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선거 및 정치에 개입하고 정부 비판 세력을 사찰한 혐의를 받는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 [뉴스1]

박근혜정부 시절 정보경찰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선거 및 정치에 개입하고 정부 비판 세력을 사찰한 혐의를 받는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 [뉴스1]

 
전국에 3200명 정보원…선거철만 되면 욕심나
경찰청 정보국에서 청와대로 올리는 보고는 크게 세 종류다. 기본적으로 각 수석실과 총리실에 매일 올라가는 ‘정책정보’가 있다. 이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3200여명의 정보 경찰이 수집한 밑바닥 정보로부터 나온다. 원래는 전국의 치안 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용도이지만. 민심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다 보니 선거에 활용하고픈 욕망이 샘솟기 마련이다. 정보경찰은 정권의 이런 의중에 맞게 ‘부산 지역 민심’과 같은 정책자료들을 꾸준히 만들어 올렸다.

 
정책 정보엔 고위공직자 비리나 언론사 등 주요 기관 분위기도 포함된다. 정보분실 소속 40여명의 정보관(IO)이 행정부처ㆍ국회ㆍ언론사 등을 출입하며 모은 정보를 압축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5~8개 주제로 압축해 올린다.
 
VIP 위한 A보고는 경찰청장이 직접 챙겨
‘별보’는 특정 현안에 대해 수십장 보고서로 올리는 좀 더 구체적인 자료다. 통상 각 수석실에서 경찰에 요구하면 만들어진다. 박근혜 정무수석실은 2016년 총선 당시 “경찰이 도움되어야 한다”며 선거 판세를 분석한 정보를 요구했고, 이에 경찰은 ‘대구지역 친박 후보 세평 자료’ ‘권역별 판세분석 및 선거대책’과 같은 자료를 만들어 올렸다.

 
무엇보다 정보경찰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건 이른바 ‘A보고’다. 일주일에 한번씩 청와대 부속실을 통해 VIP(대통령)에 직보되는 핵심 정보로, 경찰청장이 직접 해당 정보를 올릴지 말지를 승인한다. 박근혜 정보경찰이 올린 대표적인 A보고는 ‘좌파세력의 움직임 및 대응방안’으로, 특정 시민 단체와 언론 등을 콕 집어 동향을 파악하고 견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이런 정보는 청와대 입맛에 맞아야 채택되고 후한 평가를 받았다. 정권의 국정 기조에 맞지 않는 정보를 올렸다가 중간에서 ‘킬(폐기)’되면 실적을 좋게 평가받기 어려웠다. 반대로 정치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정권과 ‘한 몸’이 된 정보경찰은 승진을 보장받았다. 강 전 청장의 경우 2007년 경찰청 정보2과장을 지낸 뒤 경찰청 정보국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거쳐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경찰청 정보국장을 맡은 때는 공소장에 적시된 선거 개입 문건들이 작성된 시기와 겹친다.

 
'달콤한 독약' 못 버리는 청와대…"왜 나서서 개혁 안 하나"
특정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건이 불거지자 강 전 청장은 이런 정보보고가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그의 혐의와는 별개로 시민사회도 청와대가 먼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는 3일 정보기관 개혁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청와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정보경찰의 ‘고객’은 국민이 아니라 청와대다. 고객이 개혁 의지를 가지지 않으면 경찰청 정보국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송상교 사무총장도 “정보경찰 개혁 문제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면 되는 문제다”라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