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호하거나 싸늘하거나…춤추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중앙일보 2019.07.05 07:00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6)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저는 춤추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시선이 쏠린다. 그리고 나를 스캔하는데, 춤추는 사람으로 안 보인다는 눈치다. 사람들이 춤에 호기심을 가진 것은 확실하다. [사진 pxhere]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저는 춤추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시선이 쏠린다. 그리고 나를 스캔하는데, 춤추는 사람으로 안 보인다는 눈치다. 사람들이 춤에 호기심을 가진 것은 확실하다. [사진 pxhere]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할 때가 많은 편이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주저리주저리 자기소개를 해봐야 일일이 기억해주기는 어렵다. 그럴 때 “저는 춤추는 사람입니다”하면 갑자기 시선이 몰린다. 눈을 크게 뜨고 봐주는 것이다. “현역 서울시 장애인 댄스스포츠 대표 선수입니다”까지 ‘현역’이라는 말을 강조하면 “와~”하는 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댄스는 블루오션이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진 것은 확실하다.
 
그다음에 내 신체조건을 위아래로 스캔하는 것이 보인다. 작은 키에 아랫배도 살짝 나온 편이니 춤추는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는 눈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댄스 선수나 춤 선생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라면 큰 키에 날씬한 체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춤 선생이라면 헤어스타일이 윤이 나는 화장품을 발라 단정하고 옷차림도 말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댄스스포츠는 생활체육입니다. 이미 100년 전에 서구에서는 무대에서 보여주는 전문 댄서들만 추던 춤을 일반인들 위주로 바꿔 놓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춤추는 남자의 역할은 혼자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여성 파트너가 춤을 잘 추도록 리드하고 보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격만 보고 댄서를 평가하는 것은 편견입니다”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이쯤 되면 인기가 좋다. 사람들이 확실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러 다가와서 춤에 대한 이런저런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저는 몸치라서 춤은 안 될 거예요”, “좀 하다가 아무래도 못 따라가 포기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행 중에 댄스 강습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유럽 여행을 했을 때 큰 회의실을 빌려 차차차와 비엔나 왈츠를 가르쳤고, 남프랑스에서는 동네 공원에서 춤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몰려들고 인기가 좋았다. [사진 pxhere]

여행 중에 댄스 강습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유럽 여행을 했을 때 큰 회의실을 빌려 차차차와 비엔나 왈츠를 가르쳤고, 남프랑스에서는 동네 공원에서 춤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몰려들고 인기가 좋았다. [사진 pxhere]

 
한 번은 북유럽에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름이라 낮이 길어 자정이 되어도 하늘이 훤했다. 그날 여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5시였다. 저녁 식사를 마쳤는데도 대낮처럼 환했다. 호텔이 논밭 한가운데 있어서 근처에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호텔은 우리가 전세라도 낸 양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큰 회의실을 빌려 댄스 강습을 했다. 차차차와 비엔나 왈츠를 가르쳤는데 한두 시간 지나자 둘씩 짝을 이뤄 춤을 즐길 수 있었다. 나도 이 사람 저 사람 파트너가 되어 같이 춤췄다. 이날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가이드가 와서 “누구라도 찍으면 넘어올 겁니다. 혹시 마음에 드는 여자분이 있으면 다리 놓겠습니다”라는 농담도 할 수 있었다.
 
남프랑스에 갔을 때는 일행 중 춤 시범을 보일 두 커플에게 춤을 가르쳤다. 가르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동네 공원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런데 지나가던 현지 노랑머리 아가씨가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스텝도 흉내 내 보고 있었다. 같이 춤을 추자고 제의하니 선뜻 나섰다. 그리고는 신들린 듯 잘 추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들고 이날도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여행 내내 춤을 가르쳐 달라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인기가 좋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귈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마치 다른 여자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좋아하면서 제 아내나 딸이 그런 옷을 입으면 질색을 하는 심리와 비슷한 것 같다.
 
한 번은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장애인댄스스포츠 경기 대회에 참가한 날이 마침 내 생일이었다. 아들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경기장에 오라고 했다. 꽃다발도 받고 성적도 잘 나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아들딸 둘 다 표정이 안 좋았다. 특히 파트너와 연령대가 비슷한 딸의 표정이 더 안 좋았다.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앞을 못 보기에 망정이지 내가 민망했다. 나중에 왜 그랬느냐고 묻자 “아빠 옆에 젊은 여자가 붙어있는 게 마음이 불편했어요”하는 것이었다. “봉사 차원에서 같이 춤추는 것이지 둘 사이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물론 알고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는 기분이 안 좋았다고 했다.
 
춤을 끊었다. 댄스계에서 떠나지 않는 한 나에 대한 이미지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30년이나 해 왔던 춤을 끊는다는 것은 큰 결심이었다. 일단, 동호회 성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 나가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사진 pxhere]

춤을 끊었다. 댄스계에서 떠나지 않는 한 나에 대한 이미지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30년이나 해 왔던 춤을 끊는다는 것은 큰 결심이었다. 일단, 동호회 성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 나가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사진 pxhere]

 
한 때, 꽤 진지하게 교제하던 여성이 있었다. 양평에서 장애인댄스스포츠 대회가 있어 참가했다가 바로 용문사로 가서 데이트하기로 했다.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길이 막혀 하마터면 경기 시간 전에 도착하지 못할 뻔 했다. 운전하는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경기 시간에 조바심을 내자 그녀가 “그까짓 것 못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목숨 걸고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겨우 경기 시간 직전에 도착해 부랴부랴 경기를 마쳤다. 그녀는 내가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같이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그때까지는 좋은 일 한다며 칭찬했다. 그런데 그 경기 이후 그녀의 태도가 싸늘하게 변했다. “다른 여자와 같이 춤추는 모습을 보니 눈이 돌아가더라고요” 하며 화를 냈다.
 
며칠 후 드디어 이별 통보를 했다. “당신 주변에는 늘 여자가 있어 불안해요”라는 이유였다. “늘 여자가 있더라도 이제껏 아무 문제 없이 춤을 춰 왔다”고 해명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아예 댄스계를 떠나겠다”며 극약 처방을 했다. 그러나 “당신은 운명적으로 댄스를 그만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 후로 정말 춤을 끊었다. 댄스계에서 떠나지 않는 한 나에 대한 이미지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30년이나 해 왔던 춤을 끊는다는 것은 큰 결심이었다. 동호회 성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 나가던 학원을 그만두고, 서울시 ‘50 플러스’ 클래스에서 댄스를 가르치던 것도 그만뒀다. 서울시 장애인 댄스스포츠 연맹에 나가 장애인들을 가르치며 같이 춤추던 것도 그만뒀다. 몸으로 춤을 추는 것은 모두 그만둔 셈이다. 그러나 특강 등의 요청은 그만둘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춤 선생’으로 기억한다. 춤으로부터의 완전 탈출은 불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춤추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무대와 무대 밖으로 나뉜다. 무대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갈채를 받지만 무대 밖으로 나오면 경계의 대상이 된다.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은 댄스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사진 pxhere]

춤추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무대와 무대 밖으로 나뉜다. 무대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갈채를 받지만 무대 밖으로 나오면 경계의 대상이 된다.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은 댄스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사진 pxhere]

 
한 때, 강남 문화센터 댄스 강습을 주름잡던 강사가 있었다. 꽤 돈도 많이 벌어 주변에 그를 따르는 여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여자는 춤을 전혀 모르는 여자라고 했다. 그래서 결혼 중매센터를 소개했다. 그런데 정작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둘 사이는 잠시 호감을 갖고 만나더라도 점차 결혼에 한 발자국씩 다가서면서 주변 사람들이 말리더란다.
 
“춤 선생은 늘 주변에 여자가 있어 자의가 아니더라도 바람피울 기회가 많아 속 썩고 산다” 는 이유였다. 그 말을 귀가 따갑게 듣다 보니 처음에는 그 소리가 안 들리다가도 현장에 와서 보면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춤추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무대와 무대 밖으로 나뉜다. 무대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선망의 시선을 보내며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무대 밖으로 나오면 경계의 대상으로 본다. 우리나라 댄스계는 좁다. 같이 춤을 춰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먼발치에서 눈인사만 하고 지낸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서로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이다.
 
만약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직 댄스계에 살아남아 있을 수 없다. 댄스를 한다고 해서 바람이 나는 것은 아니다. 바람은 댄스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가능하다. ‘댄스=바람’이라는 등식은 오해라는 것을 알려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고 본다. 춤은 건전한 생활체육이며 예술이다.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강신영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필진

[강신영의 쉘 위 댄스] 댄스 동호인으로 시작해 30년간 댄스계에 몸담았다.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외면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댄스스포츠 세계는 문화, 역사, 건강, 사교,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알수록 흥미롭다. 30년 댄스 인생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