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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로펌 압수수색 뒤 위기감…"檢, 변호사까지 탈탈 털어가"

중앙일보 2019.07.05 05:00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모습. [뉴스1]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모습. [뉴스1]

"김앤장이 압수수색을 당한 뒤 위기감이 번진 것 같아요"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가 4일 의뢰인·변호사간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조사를 발표하자 한 판사 출신 변호사가 한 말이다. 의뢰인과 변호인간의 논의 내용이 비밀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미국과 유럽에선 법적 인정을 받지만 아직 한국엔 명문화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포토라인을 패싱하자 포토라인 논란이 시작됐듯 1위 로펌인 김앤장이 검찰의 잇달아 압수수색을 받자 변호사 업계에서 위기감이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지난해 1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올해 2월 가습기 살균제 수사로 서울중앙지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대한변협 "검찰의 비밀유지권 침해 가장 많아" 
이날 대한변협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조사에 참여한 250명의 변호사 중 37.7%가 침해 주체로 검찰을 지목했다. 경찰은 18.9%로 2위였고 공정위(16.7%)와 국세청(9.4%), 금융감독원(7.5%)이 뒤를 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비밀 침해 방식으로는 '변호사와 피의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변호 내용이 담긴 자료와 휴대폰, 컴퓨터 등을 증거자료로 가져갔다'고 응답한 비율이 67.3%에 이르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최근 대기업 관련 검찰 수사가 늘어나며 대형 로펌과 사내 법무팀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너무 쉽게 내주고 영장 없이도 변호사들에게 휴대폰 등을 임의제출하라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우려했다. 
 
대형로펌 첫 압수수색은 2016년 롯데 변호한 율촌  
대형 로펌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두고 처음 논란이 일었던 것은 2016년 8월이다. 당시 검찰은 롯데그룹의 탈세 의혹을 수사하며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대형 로펌이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검찰은 당시 조세포탈 수사에 필요한 자료가 법률 자문을 했던 율촌에 있다는 이유를 들었고 언론에 압수수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대한변협은 "검찰과 법원은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침해하는 영장을 남용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적폐수사 등 검찰의 특수수사가 늘어나며 로펌과 기업 법무팀이 수사를 받는 경우가 더욱 잦아졌다.
 
대형로펌에 대한 검찰의 첫 압수수색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 롯데그룹에 대한 탈세수사를 하며 롯데를 자문했던 법무법인 율촌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사진은 2017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법에 경영 비리 혐의로 출석하고 있는 신 회장의 모습. [중앙포토]

대형로펌에 대한 검찰의 첫 압수수색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 롯데그룹에 대한 탈세수사를 하며 롯데를 자문했던 법무법인 율촌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사진은 2017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법에 경영 비리 혐의로 출석하고 있는 신 회장의 모습. [중앙포토]

"협조 안 하면 당신도 피의자로 전환"
최근 한 재경지검의 검찰 수사를 받은 대기업의 사내 법무팀은 검찰에 휴대폰과 컴퓨터를 임의 제출했다. 관련 압수수색 영장은 없었지만 검찰에서 임의 제출과 진술서를 요구했고 변호사들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당시 한 사내 변호사를 참고인 조사하며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피의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한변협이 공개한 비밀유지권 침해 사례에도 1) 변호사가 근무 중인 로펌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압박하며 사건 증거의 임의 제출을 강요하거나 2) 피고인과 구치소에서 접견한 변호사에게 상담 내용을 밝히지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언급한 사례 등이 있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부장판사 출신인 여상원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법원에서 변호사와 로펌 관련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가 까다로운 편이라 검찰에서 수사로 압박하며 임의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라 말했다.
 
검찰 "법원에서 변호인 우려 반영해 영장 발부"
검찰에선 일부 대형 로펌과 변호사에 대한 수사는 법원을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지난해와 올해 법원에서 김앤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진행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법원이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할 때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다"며 "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은 그만큼 범죄 혐의가 명확히 소명된 것"이라 반박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의 경우 김앤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의 변호인이 아닌 사건의 당사자였다고 주장한다. 변호인의 비밀유지권 침해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란 것이다. 
 
지난 2월 검찰 조사를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월 검찰 조사를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성남지청장 출신의 구본진 변호사(법무법인 로플렉스)는 "변호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최소화돼야 한다"며 "이런 수사가 지속할 경우 변호인이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중견로펌의 변호사도 "검찰은 수사권 등 막강한 국가 권력을 갖고 있지만 변호인은 의뢰인과의 신뢰 관계뿐"이라며 "변호인에 대한 수사는 피고인이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 변호사 대응 어려워져"
대한변협에선 비밀유지권 침해 방지를 명문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과 박종우 서울변협 회장은 나경원 의원(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을 지난해 5월 각각 만나 나 의원이 2017년 대표발의했던 변호사법 비밀유지권 개정안 입법을 호소했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충윤 대한변협 대변인은 "변호인에 대한 무분별한 검찰 수사는 변호사 업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변호인의 비밀유지권 입법화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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