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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운동권 출신 문무일 검찰총장의 성적표?

중앙일보 2019.07.05 00:14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30여년 전 군 법무관으로 있던 문무일이 지금은 재벌급 기업인이 된 친구와 함께 한 역술인을 찾았다. 이 역술인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검사가 되면 출세를 할 수 있겠다”면서도 “호남 출신만 아니면 관운(官運)이 참 좋은데…”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하지만 문무일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정권의 앞잡이’ ‘부정과 부패의 상징’ ‘정치 검사’ 등 부정적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검사보다는 인권변호사나 판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부와의 소통 시도는 긍정 평가
실효성 있는 검찰 개혁 실패하고
정치 권력 향한 수사권 행사 미흡

그랬던 그가 28년간의 검사생활을 마치고 이달 말 물러난다. 2년간의 검찰총장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도 그에겐 ‘소임의 완수’였다. “세월이 후딱 지나갔다”는 말에 “군 생활을 한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이라고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첫날부터 소동 아닌 소동을 벌였던 그에게 검찰총장의 자리는 ‘하늘 노릇하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신임 검찰총장이 한마디 해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급히 마이크를 전달받고 “청문회를 거치면서 난화이진이란 대만학자가 쓴 한시가 생각났다”고 했던 말이 대통령 앞에서 한가롭게 한시(漢詩)를 읊은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이 소동은 간간이 부정적인 검찰총장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재료로 활용됐다. 운동권 출신의 검찰총장인 그에겐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또한 그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었다.
 
곧 임기가 끝나는 문 총장은 어떤 성적표를 받았을까.
 
그의 상관으로 있었던 검사장 출신은 “성실하고 반듯한 데다 수사까지 잘해 기대가 컸었다”고 말했다. 후배 검사는 “정의에 대한 신념이 강해 현 정부와 보폭을 맞춰 검찰개혁 작업을 순탄하게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정이 많았던 그에게 특히 국가권력의 희생자들은 감싸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부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사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외부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도 긍정의 요소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많았다.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청와대의 조국 민정수석과 법무부의 박상기 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을 주도하게 하는 바람에 검찰의 위상이 오히려 정치권에 흔들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 총장이 임기 막바지 검찰 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정치권이 ‘투정’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란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문 총장의 생각은 다르다. 검경 수사권의 본질은 검찰 수사의 정치적 편향성에서 비롯됐다. 검찰이 경찰을 지휘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권력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검찰의 인지수사 권한을 아예 없애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정치권의 개혁안은 본질을 벗어났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현 정부 들어 계속된 적폐수사에서 권력을 향한 검찰권 행사가 미흡했던 것도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요인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손혜원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 수사,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의 정치자금 사건 등을 확실히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여기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자살사건이 발생한 것은 대검에 인권부까지 설치하며 인권보호를 외쳤던 본래의 취지를 무색게 했다. 강원랜드 비리사건 등에서 수사 대상과 범위를 놓고 검사들의 항명성 돌출행동과 발언 등이 무분별하게 터져 나온 것도 문 총장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요소였다.
 
역대 모든 검찰총장들이 그랬듯 2년간의 임기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찰나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찬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검찰은 대검(大劍)을 차고 부정과 부패를 사심없이 처리하는 곳이다. ‘친절한 검찰’ ‘서비스 검찰’이니 하는 것은 존재의 이유에 역행하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수사의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그게 자신 없으면 공정하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적보다는 과실에 대한 평가가 많은 건 어찌 보면 사관(史官)과 오지랖 넓은 비판자들의 생리 때문일 것이다.
 
후임인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자신에게 씌여진 관모(冠帽)의 무게를 어떻게 버텨나갈까. 검찰 개혁을 위한 또 하나의 돌을 놓고, 백성 무서운 줄 모르는 권력자들과 그 주변을 향해 정의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까. 문 총장이 겪었던 수모를 윤 후보자라고 피해 나가긴 쉽지 않을 수 있다. 검찰총장도 가끔은 계륵(鷄肋)의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역대 총장들이 몸소 보여주지 않았나.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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