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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손가락 아니라 달을 봐야

중앙일보 2019.07.05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태양광 복마전을 비판한 KBS 보도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을 청와대가 문제 삼고 있다. 청와대 심기를 건드린 문제의 대목은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의 인터뷰다. “(모 부처) 차관이 처음에는 (저수지 10%로 제한한 패널 설치 규정을) 30%로 합의해 주다가 다 풀어버리더라고. 왜냐하면 대통령이 60% 한 데를 보고 박수를 쳤거든.”
 

정부 태양광 과속 곳곳서 파열음
문제점 지적한 언론에 화내기 전
무리한 에너지 정책 되돌아봐야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최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취임하자마자 전국의 공사 소유 저수지를 태양광 패널로 덮겠다는 구상을 밀어붙였다. 61㎿에 불과했던 공사 산하 시설의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2023년까지 428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원전 4기 분량이다. 이 과정에서 ‘만수위 면적의 10% 이내에서 패널을 설치한다’는 내부 규정까지 삭제했다. 최 전 사장의 인터뷰는 이런 태양광 속도전의 뒷자락을 들쳐 보였다.
 
방송이 나간 뒤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일방적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보도했다”며 “대통령은 그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KBS에 사과 방송을 요구하면서 보도 외압 논란까지 빚었다. 과연 문 대통령은 60% 설치한 곳을 보고 박수 친 적 없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30일 군산을 방문해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을 했다. 새만금을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선포식이 열린 곳은 새만금 방조제 북쪽 끝에 있는 수상 태양광 발전소였다. 5만여장의 태양광 모듈이 유수지 전체 면적 37만여㎡ 중 22만㎡를 덮은 곳이다. 비율로 따지면 0.5%포인트 모자라는 60%다. 당시 보도 사진은 넓은 밭처럼 펼쳐진 패널을 둘러보는 대통령 일행을 잡았다. 대통령이 손뼉을 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태양광 비전을 발표하러 이곳을 찾은 대통령이 무덤덤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최 전 사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농어촌공사가 패널 면적 규정을 삭제한 것은 대통령이 군산 유수지를 찾기 전이다. 최 전 사장이 선후 관계를 혼동했거나 거짓말을 섞었을 수 있다. 홍수조절용 유수지와 농업용 저수지는 다르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위를 파악한 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되지, “대통령은 그런 적 없다”고 화부터 낼 일은 아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신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태양광이고, 수상태양광은 핵심 중 핵심이다. 청와대의 부인(否認)은 부자연스럽다. 탈원전을 고수하는 문 대통령이 태양광에 관심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대통령한테 무슨 폐라도 되는 걸까.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한다. 엉뚱하게 권력과 언론의 갈등으로 번졌지만, 청와대가 고민해야 할 본질적 문제는 따로 있다. 에너지 정책의 현실성이다. 최규성 사장이 물러난 뒤 농어촌공사는 최근 수상태양광 설치 목표를 10분의 1로 줄였다. 사업의 무리함과 비현실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태양광 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산과 들을 파헤치고, 물을 덮은 태양광 패널은 흉물이 돼가고 있다. 농촌 주민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반대하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신재생에너지 취지는 좋다. 한국 에너지 생태계에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 맞는지, 효율성은 어떤지 따져 봐야 한다. 과할 경우 에너지 안정성의 문제도 생긴다. 에너지의 전환은 곧 권력의 전환이다. 그 과정에 잡음이 없을 수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태양광 속도전 이면에는 돈과 이권을 둘러싼 추문과 소문이 쌓이고 있다. 언론이 마땅히 짚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도 언론인 출신의 청와대 수석은 과민반응을 보였다. 언젠가 드러날지 모를 민낯을 미리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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