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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루브르 피라미드 아래 묻혀있는 것

중앙일보 2019.07.05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루브르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운 건축가. 중국 출생 미국인 건축가 아이엠 페이가 102세 천수로 세상을 떠났다. 서양 문화계의 정상에 오른 가장 독보적 아시아계 인물.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정도가 간신히 비교되겠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
왕조부터 이어온 백성 불신과
공무원이 모든걸 구속하는 규정이
결국 도시풍경으로 가시화

왕궁 루브르는 프랑스혁명 이후 박물관이 되었다. 집권군주들 요구 따라 적당히 증축된 건물군이 박물관으로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미테랑 대통령이 건축가를 낙점했다. 아이엠 페이는 처음에는 고사했으나 결국 대통령의 요청에 작업을 수락했다.
 
그런데 건축가의 요구에 좀 당황스런 것이 있었다. ㄷ자 건물의 한쪽 날개를 사용하는 재무부를 내보내 줄 것.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건축가는 주차장이던 중앙부의 나폴레옹코트를 비워 지하를 박물관의 중심공간으로 바꾸었다. 유리 피라미드가 박물관의 새 입구였다. 공간적·역학적·역사적으로 해석할 때 대안이 없을 만큼 탁월한 디자인이었다. 위대한 디자인은 항상 가장 간단하다.
 
언제 어디든 반대의 구실은 돌멩이처럼 널렸다. 논쟁이 점화되었다. 루브르가 디즈니랜드냐는 비난부터 그걸 어찌 닦겠느냐는 시비까지. 눈 째진 동양인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비난에 건축가도 대통령도 꿈쩍하지 않았다. 가장 투명한 구조물을 만들겠다는 건축가의 의지 따라 유리제조업체는 저철분유리라는 전대미문의 투명한 유리를 납품했다. 청소의 질문에는 유리청소 로봇이 등장했다.
 
우리도 그런 랜드마크 만들자. 이 화두로 고민하는 것이 한국의 지자체장들이다. 아이엠 페이를 초청하자. 그런데 수의계약이 불가능하다. 한국 대통령이 외국인 건축가를 지명한다면 그 의도만으로도 야당 손에 청룡언월도를 쥐어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오히려 프랑스가 이상한 사례였다. 아이엠 페이도 공공작업에서는 공모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모전 이후에야 한국이 제대로 보인다. 당선자의 권리는 설계권이 아니고 용역계약의 우선협상권이다. 당선되었어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다음 순위로 계약 대상이 넘어간다. 설계비는 공모 시에 공고되나 막상 계약하려면 저 이름부터 괴상한 과정, 수의시담(隨意示談)을 거친다. 공고한 액수를 일방적으로 깎는다. 국토교통부 지침으로 만류하기 시작했어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수의시담은 공무원의 예산절감 실적이다.
 
계약은 쌍방 의무 규정이므로 계약과 함께 계약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발주 용역에 계약금이 없다. 작업 완료 전 작업비 일부를 받으면 이건 선급금이다. 10원 단위까지 맞춘 영수증 첨부해서 사용증빙 보고해야 한다.
 
건축가의 작업내용을 정리한 게 ‘과업지시서’다. ‘과업내용서’로 바뀐 곳도 있지만 곳곳에서 여전히 지시한다. 건축가의 요청에 재무부를 내보내는 나라와 말단공무원이 건축가에게 지시하는 나라의 도시풍경이 비슷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발주처가 대지를 바꿔도 대꾸 말고 당선작 디자인 버리고 재설계해야 한다. 계약·착수·완료·청구 때마다 작성해 바쳐야 할 것으로 각서·보증서·증권·계획서·조서 등이 망라된다. 계약하면 착수보고·중간보고·최종보고 외에 각종 심의, 자문회의 거쳐야 한다. 자문위원이 유리청소법 시비 걸면 역시 당선작 디자인 바꿔야 한다. 아이엠 페이는 조건에 동의하고 계약서에 서명할 것인가.
 
일정 시공비 이상이면 공사에 조달청 등록 관급자재를 써야 한다. 저출분유리라는 새 재료가 이 목록에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 길은 있지만 분명 멀고 험하니 가보지 않은 길은 가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이런 난맥상을 파들어가면 결국 한국사회 전체를 어둡게 포박하고 있는 거대한 실체를 대면하게 된다. 불신.
 
대한민국은 왕조청산 아닌 왕조회고를 뿌리에 감고 작동한다. 왕조의 근간은 백성에 대한 의심과 통제다. 식민시절까지 겹쳐진 불신의 시스템이 청산 아닌 강화로 공무원들을 틀어쥐고 조종한다. 누가 왜 정했는지 알 수 없는 불신의 행동강령 펴고 생존에 유리한 문구 짚고 선행사례 요구한다. 그래야 공무원도 감사에서 살아남는다. 결국 누구라도 그 안에서는 복지부동해야 한다. 모순자각 없다면 절망스럽고 수정의지 없다면 위험한 사회다.
 
건축은 엄청난 자원, 인원의 투입 작업이다. 그 진행과정은 연루된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고 공간으로 번역된 시대정신이다. 불신으로 시간·능력이 소진되는 사회에서 역사적 가치의 건축 논의는 비아냥 대상이고 랜드마크 열망은 허망한 테마파크를 배회할 따름이다.
 
루브르는 완성되지 않았다. 시대의 요구와 정신에 맞춰 바뀌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건축가에 의해 또 바뀔 것이다. 그것이 건축에 대한 역사의 개입이고 역사에 대한 건축의 증언이다. 루브르의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 아래 묻혀있는 것은 미술품 아니고 사회 퇴적층이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좌파공화주의자 대통령은 그가 선택한 건축가에게 프랑스 최고 영예,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수여식 거행할 곳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유리 피라미드.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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