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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일본 수출 규제는 보복적 성격”

중앙일보 2019.07.05 00:05 종합 1면 지면보기
청와대가 4일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를 사실상 ‘보복’으로 규정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최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취한 ‘보복적 성격’의 수출 규제조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대응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의용, NSC 열어 “국제법 위반”
무역문제 아닌 안보 차원서 접근
당초 “정치적 보복” 26분 뒤 수정

티타늄 합금, 방사선 측정기 등
일본 내달 2차 수출 규제 가능성

청와대는 당초 배포한 자료에선 일본의 조치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정치적 보복 성격으로 규정했다”고 했다가 26분 만에 “보복적 성격의 수출 규제”로 수정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최종단계에서 지금 상황에 맞는 단어로 정리했다”며 앞선 자료의 표현에 대해선 "실무자의 실수로 잘못 나갔다”고 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사실상의 ‘무대응 원칙’에 따라 일본의 조치에 대해 정면 대응을 자제해 왔다. 그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강제징용에 대한 사법 판단을 경제에서 보복한 조치라고 명백히 판단한다”며 “일본에 상응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공개 발언한 걸 기점으로 대응 방식의 변화가 감지됐다. 일본은 이날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 시행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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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가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NSC가 무역 관련 사안을 공식 안건으로 논의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가 이번 문제를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닌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규정한 ‘보복’이라는 표현 역시 이례적이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첫 보도자료 배포 1시간여 뒤 문자를 보내 ‘외교적 대응방안’으로 ▶WTO 제소를 포함하고 ▶일본 조치의 부당함과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 등을 주요국에 설명하겠다는 걸 예로 들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일 일본 정부에 양자협의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자협의는 우리 정부가 대응책으로 꼽는 WTO 분쟁 해결절차상 첫 번째 조치다.
 
윤 수석은 ‘보복적 성격’으로 규정한 데 대해선 “아베 총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일 일본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답한 게 사실상 ‘보복적 조치’ 인정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2일 김상조 정책실장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데 이어, 이날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이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삼성전자의 의견을 청취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가 외교와 안보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김 차장이 나선 것”이라며 “김 차장이 통상 전문가라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NSC 회의의 멤버이기도 하다.
  
홍남기 “일본 보복에 상응조치 강구” 유명희 “양자협의 하자”
 
한국 정부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대응 모드로 옮긴 가운데, 일본 정부는 다음 대항 조치로 한국을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예고해 양국 간 갈등은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이중 용도 품목에 대해 수출을 통제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국가, 즉 ‘화이트 국가’(현재 27개국)에 대해선 이런 품목의 개별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해 주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면 식료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전 품목이 수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국내 산업계 전반에 충격이 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24일까지 공청회를 거쳐 다음달 중 정령(政令·시행령) 개정 방식으로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특별히 ‘WMD 개발 등에 전용 우려가 강한 사례’라며 40개 품목을 예시로 들고 있다. 여기에는 티타늄 합금과 같은 특수강 및 주파수 변환기, 대형 발전기, 방사선 측정기 등 각종 산업 분야에 필요한 기기·부품·소재가 망라돼 있다.
 
이를 놓고 이번에 수출 규제 대상이 된 핵심 소재들처럼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아 대체품이 없는 제품들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품질이다. 서석숭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실제 어떤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품질인데, 양질의 최첨단 부품과 소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규제조치로 내놓은) 세 가지 품목은 맛보기용일 수 있다”며 “화이트 국가에서 빠지면 일본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유롭게 제재 대상을 정할 수 있어 우리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금수 대상 확대 움직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한국을 정치적인 이유로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것은 국제 규범의 상식을 벗어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김상진·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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