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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유소년 야구 약물, 성적에 목맨 ‘스포츠 사교육’

중앙일보 2019.07.05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김식 스포츠팀 기자

김식 스포츠팀 기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35)씨가 자신이 운용하는 야구 교실 회원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씨는 지난 2일 구속돼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씨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의 근육강화제를 불법으로 입수한 뒤 학생 7명과 성인 1명에게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에서 좋은 약을 가져왔다. 부작용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이 주사를 맞으면 좋은 프로팀이나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학생들을 꼬드겼다. 이 과정에서 1년간 1억 6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반도핑 의식이 높아진 요즘 10년이나 프로에서 활약했던 이씨가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약물의 실체를 속인 채 근육강화제를 투약했다는 건 충격적이다.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은 성 기능 장애, 불임, 간 수치 상승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한은회)는 4일 “이씨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한은회는 깊은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순철 한은회 회장은 “너무나 부끄럽고 충격적이다. 과연 이 문제가 한사람 만의 잘못이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이 회장 말대로 이번 일은 이씨 개인의 범죄가 아니다. 야구계의 반성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 무엇보다도 야구 교실에서 금지약물을 투약한 사례가 이씨뿐이라고 믿기 어렵다. 약물이 쉽게 유통된 걸 보면 여러 사람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설 스포츠 아카데미가 각종 위법행위에 얼마나 취약한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야구뿐 아니라 축구·농구 등에도 여러 형태의 ‘스포츠 사교육’이 존재하고 있다. 2011년 주말리그 도입 등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정부정책이 시행되자 스포츠 아카데미가 활성화한 것이다. 체육(體育·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고, 성적 향상이라는 목적만 남았다.
 
현행 법령으로는 개인의 스포츠 아카데미 운영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사업 허가는 물론 등록도 필요 없다. 감시와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약물 사건이 터졌다. 류대환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드래프트 대상자에 대한 도핑테스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 선수에 대한 도핑테스트와 반도핑 교육, 그리고 사설 아카데미 운영 실태조사 등은 경기단체의 업무 범위가 아니다. 이씨의 범죄로 인해 ‘스포츠 사교육’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식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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