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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아이언으로 260m…‘한국의 켑카’ 서요섭

중앙일보 2019.07.05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장타자 서요섭. 드라이버로 살살 치면 300야드, 세게 치면 300m를 날린다. [뉴시스]

장타자 서요섭. 드라이버로 살살 치면 300야드, 세게 치면 300m를 날린다. [뉴시스]

2016년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 데뷔한 서요섭(23)은 2번 아이언으로 티샷할 때가 잦다. 그냥 치면 240m, 세게 치면 260m 정도 나간다. 동반자의 드라이버 거리와 엇비슷할 때도 있다. 그러자 한 선배 골퍼는 서요섭에게 “비교돼서 창피하니까, 나랑 칠 때는 아이언으로 티샷하지 말아 달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서요섭은 올 시즌 갑자기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달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더니 바로 다음 대회인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4일 현재 상금랭킹 1위(3억6900만원)다. 지난해 상금랭킹 78위에서 무려 77계단을 뛰어올랐다. 장타력을 갖춘 데다 호감형 외모여서 인기도 좋다. 서요섭은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연장전을 치른 뒤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이후 지방 대회장에도 여성 팬들이 찾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골프 선수들은 다들 타이거 우즈(미국)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좋아하는데 서요섭은 특이하게도 브룩스 켑카(미국)를 좋아한다. 역도 선수 같은 근육질 몸으로 유명한 켑카는 현재 세계랭킹 1위다. 키 1m80㎝인 서요섭은 “켑카는 운동을 많이 해서 힘이 좋고 장타를 터뜨린다. 스윙이 정석은 아닌데도 자신만의 스윙을 가지고 있어 거리도 많이 나간다. 자기관리를 잘하는데 인간미도 있다. 내가 아직 켑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로 보면 켑카와 서요섭의 거리는 비슷하다. 서요섭의 올 시즌 평균 거리는 307야드(3위)다. 켑카(309야드)보다 2야드 짧다. PGA 투어는 페어웨이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런이 많다. 서요섭이 미국에 간다면 샷 거리가 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서요섭의 드라이버 볼 스피드는 시속 175~180마일이다. 5번 아이언 거리는 켑카와 서요섭 모두 220야드다.
 
서요섭은 “드라이버는 그냥 치면 300야드(약 274m) 정도, 세게 치면 300m(328야드) 정도 나간다.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챔피언십 결승 마지막 홀에서는 310m 정도 나갔다. 긴장된 상황이어서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출돼 좀 더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서요섭. [중앙포토]

서요섭. [중앙포토]

 
서요섭도 켑카처럼 몸이 근육질이다. 대구 지역 선배인 김대현(31)은 “요섭이를 꼬마 때부터 봤는데 성실한 자세가 돋보인다. 공을 멀리치려고 몸을 잘 만들었다.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고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상급 프로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기량을 더 갈고닦아야 한다. 퍼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주니어 선수 시절 서요섭은 골프장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퇴비를 만드는 일을 한다. 서요섭은 우연히 아는 사람이 경영하는 골프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선수의 꿈을 꿨다.
 
서요섭은 대구의 작은 연습장에서 훈련했다. 연습장 거리가 120m에 불과했다. 비교적 짧은 연습장이었지만, 서요섭은 그곳에서 공을 똑바로, 멀리 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서요섭은 “연습장 사장님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잔디가 아니라 매트에서 웨지 샷을 하고, 방바닥 담요 위에서 공을 굴리는 것만으로는 쇼트게임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난해 서요섭은 그린을 놓쳤을 경우 파세이브를 할 확률이 절반도 안 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쇼트 게임을 갈고 닦으면서, 올해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OB가 많은 국내 골프장에선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는 좁은 곳에선 2번 아이언으로 티샷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서요섭은 아직 차가 없다. 대구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레슨을 받으러 갈 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에서 악력기로 손의 힘을 길렀다. 싸구려 모텔에서 스쿼트와 푸쉬업을 하면서 꿈을 키웠다. 지난해보다 10배나 되는 상금을 벌었기 때문에 올해는 레슨 코치가 있는 용인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서요섭은 경기 중 페어웨이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기도 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깨끗해지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 서요섭이 올해 빛을 보고 있다. 힘 좋은 켑카는 메이저대회에서 훨씬 잘 한다. 서요섭도 켑카처럼 더 큰 무대에서 더 밝은 빛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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