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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리카에선 한여름 밤에도 굽고 찌고 튀긴다

중앙일보 2019.07.05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일일오끼] 치맥 성지 대구
날이 무더울수록 대구 사람은 화끈한 음식을 찾는다. 치킨·막창·찜갈비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여름밤의 낭만을 즐긴다. 근사한 노래가 더해지면 열대야도 버틸 만하다. 사진은 중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 길'에서 버스킹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날이 무더울수록 대구 사람은 화끈한 음식을 찾는다. 치킨·막창·찜갈비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여름밤의 낭만을 즐긴다. 근사한 노래가 더해지면 열대야도 버틸 만하다. 사진은 중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 길'에서 버스킹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대구에 먹을 게 뭐가 있다고.”
 

교촌·호식이 … 프랜차이즈 본고장
닭똥집·막창 등 부속 요리도 발달
따로국밥·무침회, 매운 음식 인기

다섯 끼를 먹으러 달구벌에 간다고 하자 지인이 던진 말이다. 대구 출신이든 아니든 반응은 비슷했다. 놀라움 아니면 비웃음. 지난달 27~28일 초여름 더위 속에 중구·남구·서구를 누비며 대구의 맛을 탐구했다. 치킨·따로국밥·막창…. 하나같이 자극적이라고 얕보던 음식이다. 한데 음식마다 서린 사연을 알고 나니 국물 한 숟갈, 고기 한 점 맛이 새로웠다. 투박하고 원초적인 음식 안쪽에서 진한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진짜 여름이 오고 있다. 대프리카(아프리카만큼 더운 대구)의 화끈한 음식을 생각하니 다시 침이 고인다.
  
일일오끼 대구

일일오끼 대구

갈비찜 말고 찜갈비
 
소 갈빗살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찜갈비. 나중엔 밥을 볶아 먹는다.

소 갈빗살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찜갈비. 나중엔 밥을 볶아 먹는다.

동대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동인동 찜갈비 골목으로 향했다. 대구시청 도보 5분 거리, 찜갈비 전문 식당 12곳이 늘어선 골목이다. 요즘은 일본·대만 관광객도 많이 찾는단다. 찜갈비는 갈비찜과 글자 배열만 다른 게 아니다. 맛이 천지 차이다. 간장을 기본으로 한 정갈한 맛의 갈비찜과 달리 대구식 찜갈비는 맵고 짜고 달다. 동인동에서 41년째 갈비를 찌고 있는 ‘벙글벙글찜갈비’ 장영숙(69) 사장의 설명이다.
 
“원초적이고 무식한 음식이죠. 평소에 국밥과 국수만 먹던 대구 사람들이 어쩌다 고기를 찾으면 식당에서 이 양념 저 양념 듬뿍 넣고 갈비를 쪄줬지요. 정해진 조리법도 없이 발전한 음식입니다.”
 
소 갈빗살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찜갈비. 나중엔 밥을 볶아 먹는다.

소 갈빗살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찜갈비. 나중엔 밥을 볶아 먹는다.

찜갈비(1만8000원)를 주문했다. 6가지 반찬과 채소, 냄비에 자글자글 끓는 찜갈비가 나왔다. 톡 쏘는 매운 내 때문에 재채기가 났다. 엄청난 양의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이 들어간 듯했다. 벌건 고기를 가위로 뚝뚝 잘라 먹었다.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데도 젓가락이 계속 나왔다. 밥 한 공기 뚝딱 비운 뒤, 남은 양념에 한 공기 더 볶아 먹었다.
 
‘무식한 음식’이라지만 아무렇게나 만든다고 맛난 찜갈비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갈빗살을 약한 양념에 삶아둔 뒤 주문이 들어오면 작은 냄비에 갈빗대와 갈빗살을 넣고 센 불에 찐다. 이때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 한 국자를 넣는다. 양은 냄비를 고수하는 식당도 있는데 고기가 잘 타고 냄비가 금방 식는 탓에 요즘은 대체로 스테인리스 냄비를 쓴단다.
  
서민 안주 막창구이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돼지 막창. 대구에서는 막장에 찍어 먹는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돼지 막창. 대구에서는 막장에 찍어 먹는다.

예부터 대구는 ‘육고기(대구 사람이 즐겨 쓰는 표현)’를 많이 먹었다. 그럴 수밖에. 교통이 열악하던 시절 해산물 공수가 어려웠고, 축산업이 발달한 경북 최대 도시였으니 온갖 부위를 다채롭게 변주해 먹었다. 술안주도 육식이 두드러졌다. 대구 10미(味)에 꼽히는 뭉티기와 막창 구이가 대표적이다. 뭉티기는 뭉텅뭉텅 썰어 날로 먹는 생소고기다. 2인분이 3만5000원. 안주로는 다소 비싸다. 대구가 원조인 소·돼지 막창 구이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서민이 많이 먹었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돼지 막창. 대구에서는 막장에 찍어 먹는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돼지 막창. 대구에서는 막장에 찍어 먹는다.

점심으로 소갈비를 먹었으니 저녁은 돼지 막창이 좋겠다. 안지랑 곱창거리로 갔다. 곱창 간판을 내건 식당 50여 곳이 200m 거리에 불야성을 이뤘다. 대구에 수많은 맛 거리가 있지만 안지랑처럼 많은 식당이 단일 메뉴로 자웅을 겨루는 곳은 드물다. 대구관광뷰로 오용수 대표는 “대구 식당은 조금만 맛이 쳐지거나 불친절하면 밀려난다”며 “대구의 모든 맛 골목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향 평준화됐다”고 설명했다.
 
식당 대부분이 새로 단장했다. 드럼통 테이블에 둘러앉아 연탄불에 막창을 굽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주머니 얇은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건 여전하다. ‘안지곱창’은 곱창 한 바가지(500g) 1만2000원, 막창+곱창 ‘소’자가 2만2000원이었다. 기름기가 적당히 빠진 막창도 좋았지만, 막장(된장소스) 맛이 기막혔다. 태운 듯 바싹 익힌 곱창은 매콤한 불맛이 도드라졌다.
  
여름에는 ‘치확행’
 
치맥페스티벌 덕에 대구가 ‘치맥’ 성지로 거듭났다.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치맥페스티벌 덕에 대구가 ‘치맥’ 성지로 거듭났다.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누가 뭐래도 대구는 치킨의 도시다. 2013년 시작한 치맥 페스티벌을 보자. 닷새간 100만 명 이상이 모여 닭 40만 마리와 맥주 30만ℓ를 해치운다. 마지막으로 수치를 집계한 2015년 기준이다. 올해는 축제 시간을 오후 11시까지 1시간 연장했다. 얼마나 많은 ‘치느님’이 희생될지 알 수 없다. 올해 슬로건은 ‘치확행(치킨은 확실한 행복)’이다.
 
진주통닭 엄주광 사장이 통닭을 튀기는 모습.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진주통닭 엄주광 사장이 통닭을 튀기는 모습.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전국구 브랜드로 거듭난 교촌·멕시카나·호식이두마리 등 숱한 치킨 프랜차이즈가 대구에서 태어났다. 파닭부터 카레 치킨까지, 브랜드만큼 다채로운 치킨 메뉴가 대구에서 개발됐다. 닭똥집까지 튀겨 먹는 도시가 대구다. 평화시장에만 닭똥집 전문점이 28곳이나 있다.
 
튀김옷이 얇고 속살이 부드러운 옛날식 통닭.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튀김옷이 얇고 속살이 부드러운 옛날식 통닭. [사진 한국치맥산업협회]

대구 치킨의 위상은 시장 통닭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온마리 튀김(1만6000원)’으로 유명한 남문시장 진주통닭을 가봤다. 얇은 튀김옷, 짜지 않고 부드러운 속살이 요즘 유행하는 치킨 맛과 달랐다. 31년 전, 친구 누나 가게를 넘겨받았다는 엄주광(64)·김도영(60) 부부는 내년에 아들에게 가게를 넘긴단다. 그런데도 서울·순천 등지의 유명 치킨집을 찾아가 공부한다고 한다. “손님 입맛이 달라지니 어쩔 수 없어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부부는 치킨 무와 양념도 직접 만든다. 440㎏에 달하는 무를 두 달에 세 번꼴로 담근단다.
  
대구의 소울푸드 따로국밥
 
소고기와 대파, 무를 넣고 가마솥에 끓인 따로국밥. 대구 시민의 소울 푸드다.

소고기와 대파, 무를 넣고 가마솥에 끓인 따로국밥. 대구 시민의 소울 푸드다.

2010년 ㈔대구음식문화포럼은 찜갈비와 따로국밥을 대구 대표 음식으로 선정했다. 찜갈비가 작정하고 사 먹는 외식 메뉴라면, 따로국밥은 명절이 돌아오면 큰맘 먹고 끓여 먹는 소고기 무국에서 비롯됐다.
 
한데 헷갈린다. 따로국밥이 아니라 대구식 육개장도 있다. 영남일보 이춘호 음식전문기자는 대구식 소고깃국이 크게 6가지 형태로 분화했다고 분석했다. 식당에 따라 육개장·해장국·따로국밥 등으로 달리 부른다. 소고기·대파·무를 빼면 사골·우거지·선지·숙주나물 등 들어가는 재료도 제각각이다.
 
27일 아침 말끔한 국물이 끌렸다. 전날 맵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였다. 73년 묵은 노포인 ‘국일 따로국밥’을 떠올렸다가 걸쭉한 국물과 선지가 꺼려졌다. 앞산(660m) 초입의 ‘온천골 가마솥 한우국밥’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우국밥(8000원)을 주문했더니 놋그릇에 큼직하게 썬 대파와 무, 소고기 덩어리가 듬뿍 담겨 나왔다. 국물은 맵지 않았다. 깔끔하고 달큰한 맛이 두드러졌다. 대구관광뷰로 황보초롱 대리는 “명절 때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소고깃국, 딱 그 맛”이라고 말했다.
 
박선준(64) 사장은 16년째 오전 5시부터 가마솥에 국을 끓이고 있다. 레시피는 대단할 게 없다. 맹물에 양지·사태·앞다리·목살을 넣고 2시간 동안 끓인 뒤 무와 대파, 고추기름을 넣는다. 박 사장은 “국물 맛이 얕다는 사람도 있지만 집에서 끓이듯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무침회인데 회가 없다
 
오징어 숙회를 고추장, 미나리와 버무려 먹는 무침회.

오징어 숙회를 고추장, 미나리와 버무려 먹는 무침회.

육고기가 지겹다면, 한끼는 해산물이 어떨까. 내륙도시인 대구에도 전국적으로 이름난 해물 요리 골목이 있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화제가 됐던 반고개 무침회 골목이다. 현재 골목에는 무침회 전문 식당 14곳이 모여 있다.
 
요즘은 납작만두를 함께 먹는다.

요즘은 납작만두를 함께 먹는다.

갈비찜이 아니라 찜갈비이듯이 회무침이 아니라 무침회다. 재료보다 ‘찌고 무치는’ 과정에 방점을 둔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 무침회에는 회가 없다. 대신 고추장 양념을 뒤집어 쓴 데친 오징어가 주인공 행세를 한다. 삶은 우렁이와 소라도 섞여 있고, 싱싱한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다. ‘푸른회식당’ 김명희(65) 사장은 “처음 식당 문을 연 35년 전에는 활어회를 구경도 못 했다”며 “그땐 많은 대구 사람이 오징어 숙회를 진짜 회라고 생각하고 먹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침회도 달라졌다. 1990년대 들어 가오리·미주구리 무침회를 팔기 시작했고, 10년쯤 전부터는 ‘납작만두’를 함께 먹는 게 유행했다. 푸른회식당에서 오징어 무침회(대 2만원)와 납작만두(2000원)를 주문했다.
 
납작만두는 이름만 만두였다. 만두소는 아예 없는 만두 피가 바싹 구운 채로 나왔다. 황당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무침회의 매운 맛과 잘 어울렸다. 뻔한 음식도 뻔하지 않게 응용하는 대구 음식의 저력이 느껴졌다.
 
대구=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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