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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m, 신의 입자 증명한 ‘빅뱅머신’의 위용

중앙일보 2019.07.05 00:02 경제 5면 지면보기
지난 3일(현지 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차로 40여분을 달려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세시를 찾았다. 2013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Compact Muon Solenoid)’ 실물을 보기 위해서다. CMS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중 입자 검출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그 실물이 국내 언론에 공식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현장 르포
힉스 입자 증명해 노벨 물리학상
한국 과학자들도 연구개발 참여
“2026년부터는 암흑물질 본격 연구”

울창한 산림과 푸른 초원 지대를 지나자 마치 커다란 컨테이너처럼 생긴 직육면체 건물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CMS 연구시설의 지상 건물이다. 얼핏 흔한 물류창고 같은 인상을 주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얘기가 달라졌다. 높이만 지상 20m에 달하는 거대한 검출기 시설의 규모와 모습에 압도된다. 막심 고브제비타 CERN 선임연구원은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물이 전부가 아니다. 지하 100m에 모든 게 있다”며 취재진을 이끌었다.
 
세계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공헌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검출기의 모습. 강입자충돌기(LHC)에서 나오는 입자의 충돌 모습을 관측하고 입자 자체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AP=연합뉴스]

세계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공헌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검출기의 모습. 강입자충돌기(LHC)에서 나오는 입자의 충돌 모습을 관측하고 입자 자체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AP=연합뉴스]

승강기를 타고 약 40여초를 내려가자 마침내 웅장한 CMS가 그 속살을 드러냈다. 지상까지 수직으로 뚫린 87.9m 터널 바닥의 벽면에는 용도별로 구분된 형형색색의 전선과 검출기가 원형으로 촘촘히 박혀 있다. 시신경을 연상시키는 붉은색 전선들이 주변을 휘감고 가운데는 뚫려있어 마치 거대한 ‘눈동자’를 연상하게 한다. 이 눈동자 속으로 빔을 발사해 여러 입자의 ‘원천’이 되는 파이프 역시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현재 CMS는 2021년까지 세부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휴지기를 갖고 있어 여러 장비가 분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동을 시작하면 파이프와 자석을 비롯한 모든 장비가 하나로 합쳐져 웅장한 눈동자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 이때 CMS의 지름은 15m, 두께 28.7m 무게는 1만4000t에 달한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가 유럽의 땅속 깊이 자리하게 된 이유는 뭘까. 막심 선임연구원은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후 양성자·중성자 그리고 이를 이루는 쿼크 등 수많은 입자가 만들어졌다”며 “이 입자들의 성질을 연구하면 빅뱅으로 시작된 우주 형성 과정을 밝힐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CERN은 우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시기별로 재현하기 위해 크게 4개의 입자 검출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일대의 지하에는 둘레 27㎞·지름 3.5m 규모의 원형 LHC가 입자를 가속하고 있다. 또 이 둘레를 따라 아틀라스(ATLAS)·대형 이온 충돌기 실험(ALICE)·LHC 보텀 쿼크 공장(LHCb)·CMS 등 총 4개의 입자 검출기가 설치돼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하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진동 등 외부의 간섭을 최대한 줄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들 거대 눈동자가 바라본 것은 바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였다. 2013년 CMS와 ATLAS 검출기로 그 존재가 증명될 당시 과학계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이론적으로 빅뱅 이후 탄생한 모든 입자에는 질량이 없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질량을 갖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힉스 입자가 명확한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1964년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처음 그 존재를 주장했다. 반 세기 가까이 가설로만 남아있던 힉스입자는 두 검출기에 의해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검출기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는 100명이 넘는 한국 연구진도 현장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2006년 한국과 CERN 간 협력사업 업무협약(MOU)이 체결되며 한국측 대표인 KCMS 팀이 꾸려진 데 따른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역시 그 일환으로 이곳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힉스 입자의 존재는 증명됐지만, 그것이 표준모형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 등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한국 연구진은 이를 위해 CMS 검출기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입자가 내는 미세한 신호를 증폭시켜 관찰을 용이하게 만드는 ‘기체 전자 증폭기(GEM·Gas Electron Multiplier)’다. 김 교수는 “2021년 CMS가 재가동하면 GEM을 현재 사용되는 검출기보다 앞쪽에 설치해 보다 많은 입자를 분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정용호 성균관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CERN은 GEM 검출기 생산을 KCMS와 공동 연구한 한국의 중소기업 메카로에 맡겼다”며 “이곳에서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GEM을 조립하고 시험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2026년 LHC를 업그레이드해 고광도 LHC로 만드는 데 한국 연구진이 기여하고 있다. 고광도 LHC의 주요 목적은 베일에 싸여있는 암흑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10년간 CERN 내 한국인 교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여도가 높아졌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CERN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 존재감을 높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세시(프랑스)=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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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원 허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