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두환 ‘부마항쟁 軍작전 개입’ 정황 문건…“초기진압 중요” 언급

중앙일보 2019.07.04 16:07
4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막한 부마 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전시 '부마 1979·유신의 심장을 쏘다!'에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씨의 행적을 담은 '군수사사'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막한 부마 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전시 '부마 1979·유신의 심장을 쏘다!'에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씨의 행적을 담은 '군수사사'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79년 부마민주항쟁 진압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됐다.  
 
부마민주항쟁40주년기념사업범국민추진위원회는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 전시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
 
육군군수사령부가 1980년 펴낸 ‘군수사사’ 제1집을 보면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79년 10월 18일 오후 12시 20분 부산 계엄사를 방문해 군지휘자들과 함께 ‘데모 진압 작전’을 논의했다.
 
이들은 초기 진압 중요성을 역설하며 시위대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은 차량 시위로 작전을 전개, ‘군의 위세를 과시’해 다른 지역으로 시위대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실제 계엄군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방문 1시간 뒤인 오후 1시 30분 해병병력 3401명 등을 동원해 계획된 무력시위를 벌였다.
 
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난동 군중 진압’의 초기 진압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루탄을 충분히 조치하라고도 전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항해 펼친 민주화운동이다.  
 
사실상 유신독재의 붕괴를 촉발한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다.
 
이에 재단과 정부는 올해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전시도 그 같은 일환으로 기획됐다. 서울(7월 4일~20일) 전시를 시작으로 광주(8월 16~9월 15일), 창원(9월 19일~30일), 부산(10월 4일~31일) 등지에서 순회 전시된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