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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일생일대의 쇼"에 민주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납치"

중앙일보 2019.07.04 09:55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을 납치했다.”

3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 마련된 독립기념일 행사 무대에 2대의 M2 브레들리 전차가 전시돼 있다. [AP=연합뉴스]

3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 마련된 독립기념일 행사 무대에 2대의 M2 브레들리 전차가 전시돼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미국 최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 행사에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 연설까지 계획한 데 대해 민주당을 비롯해 반대 진영이 비난하는 말이다. 사실상 올해 독립기념일을 트럼프 본인의 2020년 재선 캠페인용 유세장으로 둔갑시켰다는 뜻이다.
 

1963년 킹 목사 인종차별 철폐 연설 장소,
트럼프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재선 유세
민주당 "초당적 국경일 분열의 행사 만든다"
군 수뇌부 동원, "군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인 3일(현지시간) 트위터로 “내일 링컨기념관에서 열리는 7월 4일 ‘미국에 대한 경례(Salute to America tomorrow)’ 행사는 정말로 대규모일 것”이라며 “그것은 일생일대의 쇼(show of a lifetim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의 반대로 포기했던 군사퍼레이드까지 자신의 기획대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걸 자랑한 것이다. 트럼프는 행사를 위해 1000㎞ 이상 떨어진 육군부대에서 M1 에이브럼스 탱크와 M2 브래들리 전차를 실어날라 3일 링컨기념관 무대 앞에 전시했다.
 
이날 미 국립공원청이 행사 준비 비용을 마련하려 전국의 국립공원 입장수익 250만 달러(약 29억원)를 전용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직접 반박하기도 했다. 별도 트윗에서 “내일 위대한 행사 비용은 그것의 가치에 비해 거의 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비행기와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고, 공항은 바로 이웃에 있다(앤드루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료뿐”이라며 “우리는 탱크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고 불꽃놀이는 두 개 위대한 회사가 기부한다. 멋지다”라고 덧붙였다. 군사 퍼레이드는 군이 보유한 것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돈이 안 들고, 예년 두 배 규모의 불꽃놀이는 오하이오 팬텀 파이어웍스와 뉴욕 파이어웍스 바이 구루치 2개 사가 각각 75만 달러, 100만 달러어치를 기부하기로 한 것을 들어 반박한 셈이다.
 
올해 행사는 4일 현지시간 오전 11시 45분부터 군악대를 포함한 군사퍼레이드로 시작된다. 앤드루스에 출발한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F-35 스텔스 전투기의 기념 비행도 함께 진행한다. 트럼프 본인이 등장하는 본행사는 오후 6시 30분 시작한다. 독립기념일 명물인 불꽃놀이는 9시부터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민권 행진 도중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미 국립문서기록청]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민권 행진 도중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미 국립문서기록청]

 
민주당은 지난달 19일 공식 재선 출마선언을 한 현직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연설에 자신의 대선자금 큰 손 기부자들을 초청하고 사실상 유세를 벌이겠다는 데 경악했다. 특히 링컨기념관은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흑백 통합과 인종차별 철폐의 기념비적인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적 장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Again)" 구호가 울려퍼지는 건 민주당으로선 악몽인 셈이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7월 4일은 초당적이고 비정치적인 날”이라며 “공공 예산을 들여 국가기념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당파적 선거유세장을 만들어 갈등의 행사를 추진하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 출신 제럴드 코널리 하원의원도 별도로 “대통령이 가장 초당적이고 신성한 미국인의 국경일에 당파 정치를 끼워 넣었다”고 비난했다.  
 
CNN방송은 또 “군 지도자들이 이날 행사에 트럼프 대통령 곁에 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군 수뇌부는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행사를 정치화하는 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이날 행사를 공공연히 정치 행사로 변질시킬 경우 참석자들은 군인의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방부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대행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리처드 스펜서 해군성 장관, 매슈 도너번 공군장관 대행, 밥 버크 해군 참모차장, 스티븐 윌슨 공군 참모차장 등이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CNN은 공개했다  
 
최근 들어 시민 축제가 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대통령이 참석하거나 직접 연설까지 하는 것이 드문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이 연설 자체를 막기 어려운 이유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1801년 독립 25주년 때 군사퍼레이드와 함께 연설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175주년 때 당시 15만명의 군중 앞에서 한국전의 진전 상황에 대해 연설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가 소란을 피우는 가운데 사전 영상 녹화 연설을 했다. 1976년 독립 200주년 때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연설을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한 뒤 백악관에서 100만명 이상의 인파를 지켜봤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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