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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홍콩 시위에 떨고 있는 37조원…내 ELS는 괜찮다고?

중앙일보 2019.07.04 06:00
수천 명의 홍콩 시민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철폐를 요구하며 센트럴 에든버러광장에서 야간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휴대폰 불빛을 밝히며 ‘자유 홍콩’과 ‘민주주의’ 구호를 외쳤다. [중앙포토]

수천 명의 홍콩 시민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철폐를 요구하며 센트럴 에든버러광장에서 야간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휴대폰 불빛을 밝히며 ‘자유 홍콩’과 ‘민주주의’ 구호를 외쳤다. [중앙포토]

 서울 개포동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A(55)씨는 지난 2일 아침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홍콩에서 사상 초유의 입법부 청사(국회) 점거 시위가 발생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A씨는 오전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ELS에 들어있는 제 돈 3000만원 괜찮겠죠?”
 

3월말 ELS 발행 잔액 74조원 중
절반인 37조원, H지수가 기초자산
2015년 ‘H지수발 악몽’ 트라우마도
본토 기업 상장, 시위 영향 적지만
상황 악화 여부 예의주시할 필요도

 주가연계증권(ELS)에 목돈을 묻어둔 투자자들이 최근 긴장하고 있다. 홍콩 시위가 격화했다는 소식에 ELS 기초자산으로 많이 쓰이는 항셍차이나기업(HSCEI, 이하 H지수) 지수가 급락할까 걱정돼서다.  
 
 지난 1월 초 9761.60까지 떨어졌던 H지수는 지난 4월 1만1881.68까지 올랐다가 최근 1만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H지수 한달 움직임 [구글 캡쳐]

H지수 한달 움직임 [구글 캡쳐]

 
 ELS는 주요국 대표지수나 개별 종목 주식 2~4개를 묶어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이다. H지수와 유로스톡스50, 니케이225, 코스피200 등을 묶어 파는 상품이 많다.  
 
 만기 전에 기초자산이 녹인(Knock-inㆍ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하지 않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원금에 더해 4~5% 수준의 약정 이자를 돌려준다. 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이 ELS 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ELS 발행 잔액은 총 74조4000억원이다. 지난 1분기 발행된 ELS는 총 19조8000억원인데 이중 H지수를 기초자산에 편입한 것은 12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62.6%에 달한다.
 
 업계에선 현재 발행된 ELS 중 절반 가량이 H지수를 기초자산에 편입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3월말 ELS 발행 잔액(74조4000억원) 기준으로 약 37조원 가량의 자금이 H지수 변동에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단 얘기다.
  
 홍콩 시위 소식에 ELS 투자자가 긴장하는 건 2015년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2015년 4월 17일 1만4536.67포인트까지 올랐던 H지수는 이듬해 2월12일 7505.37포인트까지 떨어졌다. 8개월 만에 반토막이 났다. 때문에 당시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했던 ELS 중 약 2조 원어치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하며 투자자에게 상처를 남겼다.  
  
1일 입법원 청사를 점거한 시위대가 벽에 걸린 홍콩 엠블럼을 스프레이로 훼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 입법원 청사를 점거한 시위대가 벽에 걸린 홍콩 엠블럼을 스프레이로 훼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홍콩 시위가 2015년의 ‘H지수발 ELS 악몽’을 다시 소환할까. 의견은 엇갈리지만 상대적으로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중호 KB증권 연구원은 “홍콩 시위가 정치적으로는 중요하고 큰 이벤트지만 아직까지는 H지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며 “홍콩 시위 이후 오히려 지수가 개선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9일 홍콩에서 103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발발한 다음날인 지난달 10일 H지수는 전거래일보다 1.86% 올랐다. 
 
 사상 유례없는 국회 강제 점거 시위가 일어났던 지난 2일에도 지수는 전날보다 0.91% 오른 1만981.23에 마감했다. 홍콩 시위가 이어졌던 지난 3주간 동안 지수는 4.32%나 올랐다.
 
 정치 불안과 H지수의 움직임이 따로 노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지수의 성격이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H지수는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의 주가지수”라며 “상장회사가 중국 기업인 만큼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에 더 위험한 것은 홍콩 시위보다 중국 경제에 영향을 주는 대내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ELS 상품을 개발하는 최성용 한국투자증권 DS부장은 “H지수와 ELS 수익률은 미ㆍ중 무역분쟁, 글로벌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변수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며 “ELS는 시황이 흔들리더라도 약속한 이자율을 줄 수 있도록 구조화한 상품인 만큼 매우 큰 경제적 이벤트가 아니면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수가 하락을 노린 저가 매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수가 떨어지면 기준가가 낮아지는 데다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작아 오히려 이때를 노리는 투자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시위가 오랫동안 이어지거나 격화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어서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2014년 우산혁명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한 이번 시위 규모가 더 커지고 격렬해지면 홍콩 경제 시스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칠 수도 있다”며 “홍콩은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사용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높아 ‘유동성 엑소더스(탈출)’가 나타나면 지수에 어떻게 움직일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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