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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판문점에서 세 나라 정상의 ‘상상력’ 충돌

중앙일보 2019.07.04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판문점은 독보적이다. 그곳은 냉전의 최후 대치 현장이다. 거기서 뿜어내는 상징은 압도적이다. 지도자는 상징을 낚아챈다. 그것을 재구성해 국정 자산으로 삼는다. 상징은 리더십 상상력의 핵심 요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런 재능을 단련해 왔다. 6·30 판문점 무대에서 그런 기량이 발휘됐다. 그는 북한 땅을 밟았다. 그 기록의 첫 현직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절묘하다. 그들 말대로 역사적 순간이다.
 

트럼프는 판문점의 상징 낚아챘다
김정은, 묵시록적 어휘로 응수
북·미 밀담에 문 대통령 빠진 것은
핵무기 없는 나라의 비애

그 장면은 청와대의 당초 시나리오와 다르다. 그 모양새는 이런 형태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먼저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백악관이 거부했다.  
 
그것으로 문 대통령의 조력자 역할은 마감됐다. 트럼프 방식은 혼자만의 무대다. 그 성향은 배타적 독점과 유난스러운 과시욕이다. 상징 장악의 극적 순간은 공유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쇼의 스포트라이트는 1등에게 집중된다. 트럼프는 그런 TV 쇼의 진행자 출신이다.
 
역사의 순간은 언어로 기록된다. 트럼프의 말은 찬사로 구성됐다. ‘영광이다. 특별한, 굉장한(great)’의 반복이다. 북한 경제는 미국의 제재 탓에 휘청거린다. 최고 영도자의 낯빛엔 그로 인한 곤경은 없다. 그의 말은 준비된 응수다. 그의 어휘는 묵시록적 상상력을 담았다. “이런 훌륭한 관계가··· 난관과 장애들을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자유의집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대통령의 처지가 노출됐다. 남·북·미 정상의 만남은 있었다. 하지만 3자 회담은 없었다. 김정은-트럼프의 53분짜리 회담만이다. 문 대통령은 사전에 “대화의 중심은 미국과 북한 간”이라고 했다. 그 말은 체면치레로 들린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의 이런 분석은 유효하다. “북한이 3자 회담을 거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북·미 밀담의 성격은 핵보유국 간 대좌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이해당사국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소외됐다. 그것은 핵무기 없는 나라의 비애다. 그런 상황 속 지도자의 한계다.
 
트럼프의 DMZ 무대 주제는 다양하다. 그는 국내정치용으로 써먹었다. “오바마는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끊임없이 구걸(begging)했다. 김 위원장은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 측근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일축한다. 트럼프의 그런 공세에 자화자찬과 과장, 조롱과 능청이 깔렸다. 그런 논쟁의 수혜자는 김정은이다. 젊은 영도자의 국제적 주가는 상승한다.
 
트럼프는 거침없다. 약식 회견에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5월 초 두 차례 발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변은 미묘하다. “다른 나라도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것은 소형 미사일로 단순한 테스트다.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김 위원장이 발사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면 괜찮다는 뜻인가. 북한의 ICBM은 미국 본토를 때린다. 그 답변은 이기적이다. 다수 한국인의 불안감은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무대였던 판문점도 그 미사일의 사정권이다. 그의 언급은 공허하다. 북한은 핵실험을 새롭게 할 필요가 없다. 2년 전에 사실상 핵무장국이 됐다.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기존 틀을 유지했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제재 해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방심은 안 된다. 다수 한국인은 트럼프의 언행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다. 한국 상황은 그만큼 초췌하다. 한국의 독자적 군사 레버리지는 없다. 김정은 체제의 목표는 핵무장국의 지위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장면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북·미 간에도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2일 국무회의) 그 판단은 정확한가. 트럼프가 그렇게 믿을까. 김정은의 생각과 같은가. 김정은의 특성은 기습과 돌변이다. 트럼프의 면모는 변칙과 돌출이다. 두 사람의 시각이 어떻게 드러날지 미지수다. 지난 4월 김정은의 모욕적인 표현이 떠오른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나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섣부른 짐작으로 비춰진다. 북핵 문제는 파란과 곡절이다.
 
‘상상력 무장’이 장관들의 과제로 등장했다. 2일 문 대통령의 주문이다. "북·미의 만남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과거의 정치문법을 뛰어넘은 상상력을 발휘해 달라.”  
 
동북아는 리더십 상상력의 경쟁 공간이다. 상상력의 발동 조건이 있다. 그것은 세련된 역사 감각이다. 무장되지 않은 평화의 외침은 비굴해진다. 그것은 20세기 역사의 교훈이다. 핵심 조건은 주인의식이다. 북한 핵문제에 다수 한국인의 운명이 걸렸다. 투철한 주인의식은 용기와 지혜를 준다. 그 순간 상상력은 대담하면서 정교해진다.  
 
판문점 무대는 강렬했다. 그 감흥은 얼마큼 갈까. 상징은 실질을 갖춰야 한다.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은 힘들다. 그러면 6·30 무대의 상징 효과는 희미해진다. 상징은 소품으로 추락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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