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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폭동은 없었다

중앙일보 2019.07.04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아르헨티나 메시가 코파 아메리카 4강전에서 브라질에 0-2로 진 뒤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메시가 코파 아메리카 4강전에서 브라질에 0-2로 진 뒤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다. [AP=연합뉴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리오넬 메시(32·아르헨티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동료는 물론, 상대 팀 브라질 선수들의 위로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는 수퍼스타지만, 말없이 터덜터덜 라커룸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초라했다.
 

코파아메리카 준결 아르헨에 2-0승
5년 전 월드컵 독일 상대 4강전
1-7 참패한 구장서 아르헨 격파
당시 분노한 관중 ‘난동 악몽’ 씻어
메시, 대표팀 ‘무관 징크스’ 계속

축구의 신이 또 한 번 메시를 외면했다. 메시는 3일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코파 아메리카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해 풀 타임을 뛰었지만, ‘영원한 맞수’ 브라질에 0-2로 패했다. 스페인 프로축구 명가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매 시즌 유럽 클럽 축구 무대를 휘젓는 메시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는 단 한 번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보지 못한 징크스를 이번에도 떨쳐내지 못했다.
 
메시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신(神)계’ ‘완전체’ 등으로 극찬을 받는 공격수다. 클럽 축구에선 메시의 발자취가 곧 역사다. 바르셀로나 한 팀에서만 뛰며 프리메라리가 우승 10차례,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우승 6차례,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4차례 등 총 34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최고 권위의 축구상인 ‘발롱도르(Ballon d’Or)’를 5차례 수상한 것을 비롯해 개인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대표팀에서 활약은 개인 수상기록에 한참 못 미친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출전해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건 지난 2005년 네덜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과 U-23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개 대회뿐이다. A대표팀에서는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 ‘맞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가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2016년 유럽선수권과 올해 유럽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끈 것과 비교되는 성적표다.
 
남미 국가대항전 챔피언을 가리는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메시는 네 차례(2007·2011·2015·2016) 출전해 세 번이나 아르헨티나의 결승행을 이끌었지만, 결과는 모두 준우승이었다.
 
‘5수’째인 이번 대회에서도 메시는 웃지 못했다. 4강에 오르는 동안 단 한 개의 필드골도 기록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움직임과 슈팅은 날카로웠지만, 상대 수비진의 집중 견제에 막혔다. 조별 리그에서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한 골을 넣은 게 이번 대회 유일한 득점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993년 이후 26년 만이자 통산 16번째 우승 도전 꿈을 접었다.
 
브라질전에서 완패한 뒤 메시는 강한 어조로 심판을 비판했다. “심판은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을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브라질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의 도전이 이렇게 끝날 줄 몰랐다. 그들(브라질)은 우리보다 뛰어난 팀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 대해 남미축구연맹(CONMEBOL)이 뭔가를 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브라질 팬이 포르투갈어로 ‘메시 잘 가’라고 적힌 태블릿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브라질 팬이 포르투갈어로 ‘메시 잘 가’라고 적힌 태블릿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결승에 진출한 개최국 브라질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선수단과 팬들이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라이벌전 승리를 즐겼다. 나란히 1골 1도움을 기록한 가브리엘 제수스(22)와 호베르투 피르미누(28)는 더욱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아르헨티나전 승리로 브라질은 5년 전 겪은 ‘미네이랑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브라질은 지난 2014년 자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치욕적인 1-7 대패를 당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종료 후 브라질 전역에서 시위와 약탈·방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경기 장소가 바로 미네이랑 스타디움이었다.
 
국제 대회 4강전인 데다 장소까지 같다 보니 킥오프를 앞두고 5년 전 비극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브라질 축구 팬들이 많았지만, 기분 좋은 승리와 함께 나쁜 기억을 털어냈다.
 
결승에 오른 브라질은 지난 2007년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9번째로 이 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브라질은 4일 칠레-페루전 승자와 결승전(8일)을 벌인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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