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허젠쿠이 사태 그 이후…유전자 편집 아기 실험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2019.07.04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유전자 편집

유전자 편집

결국 한 번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는 닫을 수 없는 걸까. 생명윤리 논란에도 과학소설(SF) 영화 ‘가타카’(1997)와 같은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를 탄생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디자이너 베이비란 시험관 속 인간배아(胚芽)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편집해 질병을 고치거나, 특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태어난 아기를 말한다. 영화 가타카는 디자이너 베이비가 일반화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자연인’의 고민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영화다.
 

러시아도 유전자 편집 아기 시도
“교정된 배아 착상 실험 구상 중”
디자이너 베이비는 시간 문제
“기술·수요·비용 해결되면 진전”

지난달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데니스 레브리코프 러시아 쿨라코프 국립산부인과 연구센터 유전자 편집 연구소장이 “(HIV 바이러스를 수용하는) CCR5 유전자를 인간 배아에 편집해 HIV 양성반응을 보이는 여성에게 착상시키는 실험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계획이 실행된다면, 지난해 11월 허젠쿠이(賀建奎·34)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교수가 인간 배아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 맞춤 아기를 탄생시킨 이후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연구 중단 선언은 말뿐, 구속력 가지지 못해
 
데니스 레브리코프(왼쪽) 러시아 쿨라코프 국립산부인과 연구센터 유전자 편집 연구소장과 허젠쿠이 전 남방과학기술대 교수. 허 교수가 앞서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레브리코프 소장 역시 그간 같은 연구를 해왔다. [AP=연합뉴스, 중앙포토]

데니스 레브리코프(왼쪽) 러시아 쿨라코프 국립산부인과 연구센터 유전자 편집 연구소장과 허젠쿠이 전 남방과학기술대 교수. 허 교수가 앞서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레브리코프 소장 역시 그간 같은 연구를 해왔다. [AP=연합뉴스, 중앙포토]

‘허젠쿠이 사태’는 당시 거센 생명윤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지난 3월 세계 7개국 18명의 생명과학 관련 학자들이 ‘향후 최소 5년간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및 착상을 전면 중단하고 이 같은 행위를 관리 감독할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과학자 가운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연구자 중 한 명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총괄교수도 포함돼 힘이 실렸다.  
 
이들은 “인위적으로 DNA에서 특정 질병 유발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은 ‘유전자 교정’이 아닌 ‘유전자 강화’에 해당한다”며 “안전성이 검증될 때까지 임상 적용이 엄격히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하는 유전자를 제거하지 못하는 표적 이탈 문제 등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모라토리엄은 선언에 불과했다. 일부 과학자들 간의 약속일뿐, 아무런 구속력도 가지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라앉는 듯했던 논란은 레브리코프 소장의 발표로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레브리코프 소장은 허 교수 연구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당시 허 교수가 편집해 착상시킨 배아는 남성이 HIV 양성인 경우였지만, 에이즈는 여성이 HIV 보균자일 경우 유전될 확률이 더 큰 만큼 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임상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그는 “모스크바에 있는 에이즈 센터와 함께 HIV 감염 여성들을 모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네이처에 따르면 해당 실험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규제는 모호해 이를 제재할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레브리코프 소장뿐 아니다. 지난달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한 불임 클리닉에서도 허젠쿠이 교수에게 접촉해 유전자 교정에 대해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한 번 깨진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연구에서 선두 경쟁이 치열하고, 유전자가위 기술처럼 유전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은 경우엔 더욱 그렇다.  
 
생명과학자들 중에는 허젠쿠이 교수처럼 당장 유전자 편집 아기를 출산시키는 연구는 아니지만 인간배아의 유전자 편집과 이를 통한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다리는 사람 적지 않아
 
미탈리포프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황우석 교수가 성공하지 못했던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를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람이다. 2017년에는 한국의 유전자가위 분야 석학 김진수 서울대 겸임교수와 함께 인간배아 유전자 편집에 성공해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미탈리포프 교수는 “내 연구의 최종 목적은, 법이 허용한다면 교정된 인간배아를 정상적인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라며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 유전 질병의 치료까지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디자이너 베이비의 세상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수 교수는 “유전자 교정 아기는 앞으로 최소 10~20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며 “아직은 사회적으로도 디자이너 베이비를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유전자가위 기술의 정확도가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가 오더라도 디자이너 베이비는 질병 치료 차원에 국한해야 할 것”이라며 “유전자 교정으로 지능이나 미모 등 특정 기능이 강화된 아이를 만드는 것은 현재 인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첨단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윤리논쟁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시험관 아기도 처음엔 충격 그 자체였다. 연구의 시작은 1960년대였다. 영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가 체외에서 난자를 성숙시키는 연구를 시작했다. 1969년에는 인간 난자와 정자를 이용해 체외수정을 한 결과를 네이처에 실었다.  
 
사회적 파장은 거셌다. 종교지도자와 과학자 중 일부는 에드워즈 박사의 연구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중단할 것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한때 연구기금 지원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1978년 7월 첫 시험관 아기 탄생했다. 급기야 교황청은 1987년 ‘생명의 선물: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을 발표하고 에드워즈 박사의 연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시험관아기도 1960년대엔 논란 속에 시작
 
그럼에도 시험관아기 시술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1985년 서울대 의대 장윤석 교수 연구팀이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300만 명 이상의 아이가 시험관 시술로 태어났다. 에드워즈 교수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최근 연이어 성공하고 있는 ‘세 부모 아기(Three-parent baby)’ 역시 첨단 생명과학을 둘러싼 윤리 논쟁의 결과였다. 2016년 6월 미국 의료진이 멕시코에서 세계 최초로 세 부모 아기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4월에도 그리스에서 두 번째 세 부모 아기가 탄생했다.
 
시작은 영국 뉴캐슬대 더글러스 턴벌 교수가 2005년 국제학술지 란셋(LANCET)에 세 부모 아기 시술과 관련한 논문를 실으면서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매년 200명에 한 명꼴로 미토콘드리아 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논문이 발표되자 절망적인 현실을 과학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2015년 2월 영국 하원이 세 부모 아기 시술을 허용하는 인간생식배아법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2016년 12월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이 세계 최초로 세 부모 아기 시술을 승인했다.
 
세부모 아기 시술은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에 이상이 있을 경우를 위한 방법이다. 뇌손상이나 근육 위축, 시력 상실 등의 유전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모계의 유전질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에 문제가 있는 여성의 난자에서 핵만 빼낸 뒤 기증자 여성의 핵을 빼낸 정상 난자에 주입하고, 이후 남성의 정자와 체외수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태어나는 아기는 어머니·아버지 외에도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까지 세 명의 유전자를 받게 돼, 세 부모 아기가 되는 셈이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연구소에서 태어나는 모든 과학기술이 실용화 단계까지 갈 수는 없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사회적으로 수요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수용가능한 비용일 경우 도중에 윤리 논쟁을 겪더라도 결국은 보편 기술로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말했다.
 
최준호·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