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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일본 보복’에 속수무책…“정밀기계 부품 수입도 끊길라”

중앙일보 2019.07.04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발기술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엎어치기도 없었다. 일본 정부가 꺼내 든 경제보복 카드에 맞설 구체적인 대응책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높인 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미·중분쟁, 한·일갈등 겹친 기업들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 좀 놔달라”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반도체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Polyimide), 포토 리지스트(Photoresist·감광액), 고순도 불화수소(HF)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반도체 핵심 소재 및 장비 개발에 6조원 투입을 대응 카드로 제시했다. 재계에선 “뻔해도 너무 뻔한 대책”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동안 일본의 시그널은 명확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3월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이나 비자 발급을 정지하는 등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징후도 있었다. 한·일 경제 교류 위축 징후가 처음으로 확인된 건 지난해 10월 무렵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나온 지난해 10월 일본은 한국 주식 시장에서 순매도 행진을 벌였다. 올해 5월로 잡혀있던 한-일 경제인 회의도 연말로 밀렸다.  
 
지난 3월, 한 일본 주재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불화수소 수출을 금지하거나 통관을 늦출 수도 있다는 소문이 최근 주재원 사이에서 돌고 있다”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들려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보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불화수소는 일본 정부가 보복 카드로 꺼낸 3가지 품목 중 하나다.
 
그럼에도 대비할 시간은 있었다. 다양한 징후가 포착된 지난해 연말부터 계산해도 한국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반년 이상이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한 통상 전문가는 “WTO 제소는 국가간 통상 분쟁에 있어 필수 코스지만 최근 사건 적체 현상으로 결론을 얻기까진 3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은 불안하다. 한 정밀기계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에서 절삭 기계 등 핵심 부품을 사고 있는데 공급이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 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 미-중 보호무역주의로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주어야 할 때 아니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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