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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없던 석고상이 활짝 웃었다, 두 꼬마가 만든 기적

중앙일보 2019.07.03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26)
여행 중 만난 마임이스트와 아이들. 쌍둥이 아이들이 깡통에 동전을 넣은 다음부터 행인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깡통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작은 친절에서 시작된 놀라운 변화였다. [사진 한익종]

여행 중 만난 마임이스트와 아이들. 쌍둥이 아이들이 깡통에 동전을 넣은 다음부터 행인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깡통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작은 친절에서 시작된 놀라운 변화였다. [사진 한익종]

 
유럽여행을 하던 중 들른 독일 뮌헨의 마리엔광장. 버스킹을 하는, 온통 흰색으로 변장한 마임이스트를 오랫동안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을까 하는 얄미운 호기심과 함께. 오랫동안 지켜봐도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마임이스트 앞에 놓인 기부용 깡통도 빈 상태 그대로였다.
 
한참이 지난 후 바이크용 헬멧을 쓴 앙증맞은 모습의 쌍둥이 아이들이 그 깡통에 동전을 넣은 다음부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표정하게 서 있던 마임이스트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아주 우아한 제스쳐를 다양하게 연출하기 시작했고 행인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많은 사람이 모금용 깡통에 돈을 넣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아이들의 기부가 마임이스트는 물론 행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작은 친절과 적은 양의 기부를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큰 감동도 작은 정성으로부터 시작되며 작은 봉사가 더 큰 봉사를 불러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작게나마 시작하는 봉사나 기부가 차츰 습관이 되어 더 크게 기여하게 되고 습관화된 봉사나 기부가 자신에게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봉사나 기부가 타인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다.
 
리지아청이 말한 동업하지 말아야 할 사람
아시아 최고 갑부 리지아청(李嘉诚)은 사귀지 말고 동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 동정심이 없는 사람을 꼽았다. 자신만을 위하고 타인에게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결국 배신하고 손해를 보게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아시아 최고 갑부 리지아청(李嘉诚)은 사귀지 말고 동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 동정심이 없는 사람을 꼽았다. 자신만을 위하고 타인에게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결국 배신하고 손해를 보게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아시아 최고 갑부 리지아청(李嘉诚, 이가성)의 예를 들어 보자.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는 리지아청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시아 최고의 갑부이자 세계 10대 부호 중 한명인 그는 ‘육불합, 칠불교’라는 그의 어록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단다.
 
육불합, 즉 함께 동업하지 말아야 할 6종류의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욕심만 채우는 사람을 들었다. 칠불교, 즉 사귀지 말아야 할 7가지 유형의 사람으로는 동정심이 없고 각박한 사람과 절대로 사귀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최고의 기부자이기도 한 리지아청이 사귀지 말고 동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의 유형으로 이기적인 사람, 동정심이 없는 사람을 강조한 점을 유심히 봐야 할 것이다.
 
젊었을 적 세탁소 점원부터 시작해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그가 이타와 봉사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신이 작은 도움이었지만 그를 바탕으로 크게 성공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작은 봉사가 큰 영향을 불러온 사례이다. 그가 이타를 중시한 이유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 타인에게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배신하고 손해를 보게 할 사람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리라.
 
이는 평소의 생각과 행동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게 되는 데 남에게 손해를,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은 평소 이타가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친구로 동업자로 사귈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얘기일 게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이 되며, 습관이 운명이 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전적으로 수긍할 얘기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베풀자. 함께하자. 그를 습관화하자.
 
우리는 남에게는 야박하고 함부로 대하면서도 자신과 자기의 가족에게는 무척 관대하고 호방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연코 강조한다. 착각하지 말라.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이해와 가족의 이해가 배치된다면 서슴없이 가족을 등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배운 가족, 특히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아니라고? 누구나 고양이 심리에 빠져 있을 수 있다. 나는 아니고 우리 가족은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고 거품을 문다. 실소를 금할 길 없다.
 
누구든지 굼벵이같이 구르는 재주 있어
취미로 걷기 시작한 것이 기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그 인연으로 제주에서 새 막을 펼치게 됐다. 지금은 제주에서 새로운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봉사와 기부는 작은 걸음이라도 첫걸음을 내딛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진 한익종]

취미로 걷기 시작한 것이 기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그 인연으로 제주에서 새 막을 펼치게 됐다. 지금은 제주에서 새로운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봉사와 기부는 작은 걸음이라도 첫걸음을 내딛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진 한익종]

 
우스갯소리로 누구든지 굼벵이처럼 구르는 재주 하나는 가지고 있다. 그 굼벵이의 재주를,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에게 베풀어 보자. 작은 기부나 봉사라고 겸연쩍어하지 말자. 큰 보답으로 돌아옴을 느낄 수 있다.
 
내 경우를 들어본다. 취미로 걷기 시작한 것이 기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기부로 맺어진 인연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그린 해녀 그림으로, 개인전도 열게 해주었으며 이윽고 제주 정착의 새 막을 펼쳐 가게 했다. 앞으로 제주에서 새로운 봉사 프로그램을 이루어 나갈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채워지지 않는 금전함 앞에서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으며 행인들의 무관심에 적잖이 실망하고 있었을 마임이스트에게 행복한 미소를 띠게 했던 두 꼬마. 마임이스트에게 자부심과 함께 생업으로서의 일을 지속하게 했으리라. 그 아이들은 어렸을 적 자신이 경험한 그 날의 일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베풂의 행복을 이어나갈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고 말한 쇼펜하우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보상을 받게 돼 있고 봉사 또한 보답이 있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 준다.
 
봉사와 기부는 작은 걸음으로부터라도 시작이 중요하다. 그런 작은 발걸음이 리지아청이 얘기한 육불합 칠불교의 이기적이지 않고 타인을 동정하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 친구도 동업자도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니, 봉사는 보상이 따르는 행위이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작은 걸음이라도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 설사 나중에 타인으로부터 돌아오는 보상이 없을지라도 봉사는 자신이 얼마나 고맙고 필요한 존재인가를 느끼며 살게 해준다.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자존감은 은퇴 후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관이다. 인생후반부 이보다 더 좋은 반려자가 어디 있을까.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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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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