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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추가에 휘핑크림 세 바퀴~' 열심히 적어 외워 본 까닭

중앙일보 2019.07.03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5)
식당에서 식사 메뉴를 주문 할 때 가끔 종업원 눈치를 보게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 pixabay]

식당에서 식사 메뉴를 주문 할 때 가끔 종업원 눈치를 보게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 pixabay]

 
친구들이랑 근처 단골 식당을 찾았다. 각자 먹고 싶은 순댓국, 선짓국, 해장국을 점찍고 들어가 주문을 하려고 하니 주인과 나이든 직원의 표정이 그냥 봐도 소원하다. 우리는 주눅이 들어서 “모두 해장국 셋이요~” 하고 점잖게 주문을 했다.
 
밥때에 한꺼번에 손님들이 들이닥친 듯 치우지 못한 그릇이 식탁에 그대로 있다. 그날따라 무심한 표정으로 찬그릇을 놓는 소리가 식탁에 부딪혀 크게 들린다. 식당에 가서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그 사람은 화를 참으며 일하는 중이다. 무거운 분위기에 대충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려니 주인인 젊은 여자가 말을 건넨다.
 
“사람 쓰기 정말 힘들어요. 어른께 홀이 바빠서 서빙 일도 좀 도와 달랬더니 사람을 쥐 잡듯 한다 그러니...” 아무렴 쥐 잡듯 할까마는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무릎 아픈 어르신 입장에선 서서 설거지만 해주기로 했는데 홀을 다니며 그릇을 날라라 하니 그것도 고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내고 눈칫밥을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여 집에 와서 소화제를 먹었다.
 
 
지금은 나도 노인노동자다. 문득 나이든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편을 들어본다. 자영업자의 일을 용량으로 따진다면 사장이 열배 백배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사업체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창살 없는 감옥에 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는 자유인이란 장점이 있지만 하루하루 품을 팔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내 일터가 잘 돌아가길 바라고 일터에서 일거리가 없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이든 어른들은 농담 같은 표현도 곡절이 있고 때로는 과격하다. 억세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이해가 된다. ‘에구~ 쥐 잡듯 하지 마소.’ 그 표현은 너무 바쁜 그 순간의 고단함을 농담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서두르지 말고 하자는 에둘러 말하는 뜻일 수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설적으로 받아들이니 그 말에 화가 났을 것 같다. 가끔 들르는 식당인데 두 분이 서로 웃으며 일할 수 있게 장사라도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손주들과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일하고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갔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고 보니 이름도 종류도 어수선하여 8살 먹은 손녀를 불렀다. “이름도 어렵고 뭔 종류가 이렇게 많니…? 아무거나 같은 거로 세 개만 달라고 해”라고 하니 “할머니 아무거나 먹으면 맛이 없어요. 자기가 먹고 싶은 거로 먹어야지요.”
 
손주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가 길고 어지러운 아이스크림 이름에 고개를 내저었다. 손녀가 동생들 몫까지 대신 주문했는데 괜히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복잡한 메뉴를 시켰는데도 상냥하게 응대해주었는데, 그것이 참 고마웠다. [사진 pixabay]

손주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가 길고 어지러운 아이스크림 이름에 고개를 내저었다. 손녀가 동생들 몫까지 대신 주문했는데 괜히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복잡한 메뉴를 시켰는데도 상냥하게 응대해주었는데, 그것이 참 고마웠다. [사진 pixabay]

 
그러면서 모가지를 한껏 빼고 올려다보며 주문을 한다. “저는 ‘베리베리 스토로베리’, 큰동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막냇동생은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으로 할 거예요. 우리 할머니는 ‘외계인’으로 주세요.”
 
난 혀 꼬부라지는 손녀의 주문에 기가 죽고 주문받는 아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젊고 상냥한 아르바이트생이 손녀가 하는 말을 따라 부르며 적더니 날렵한 손동작으로 만들어 낸 각양각색의 예쁜 아이스크림이 그릇에 담겨 나온다. “주문한 어쩌고저쩌고 미주알고주알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어쩜 그리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르는지 신기하다.
 
팁이라도 주고 싶을 만큼 기분이 상쾌했다. 문득 일본여행에서 단정하고 깨끗한 복장과 함께 조금은 느리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서비스에 감탄하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 나라에서는 노인 직원을 우대해줘서 그런가 서비스하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진솔하게 전해졌다. 분위기도 맛이 나는 게 서비스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다가 언젠가 아르바이트도 전문직이라는 어느 광고에 나오는 장면이 생각이 나서 그 광고를 찾아 적어 보았는데 따라 외워보니 3일이 걸렸다. 하하하. “초코칩 프라페 샷 하나만 추가해 주시고요. 모카 시럽 네 번, 헤이즐넛 세 번, 초콜릿 시럽 두 번, 휘핑크림 세 바퀴만 얹어 주세요.” 서비스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일하는 모든 서비스종사자, 알바생들에게 감사드린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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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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