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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아마겟돈서 애 못 낳아” 출산파업 나선 환경운동가들

중앙일보 2019.07.03 05:00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블라이스 페피노(오른쪽에서 세번째). [사진 출산파업 텀블러]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블라이스 페피노(오른쪽에서 세번째). [사진 출산파업 텀블러]

“저는 제 파트너를 사랑하고 가정도 꾸리고 싶지만 지금 이런 환경에선 도저히 애를 낳을 수 없어요.”

 
영국에서 ‘출산파업(Birth Strike)’ 운동을 이끄는 사회운동가 겸 뮤지션 블라이스 페피노(33)의 말입니다. CNN은 "페피노는 '생태계 아마겟돈(ecological Armageddon)'이 온다고 믿고, 지난해 말 사회단체 '출산파업'을 설립했다"고 전했습니다. 주로 소셜미디어 텀블러를 기반으로 동조자를 모으고 캠페인을 확산하는 목적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5톤 배출"
유럽·미국 등 기후변화 불안 증가
"인구 늘면 오염 심각…출산 거부"

 
페피노는 지난해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간한 보고서와 관련 강의를 듣고 출산파업을 결심했는데요. 이 보고서엔 “환경변화로 수 억명이 가뭄과 홍수, 극심한 더위와 빈곤의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재앙적인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간은 단 1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아이낳기 두려워…재앙 직전의 세계"
출산파업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의미의 모래시계를 배에 그렸다. 본래 모래시계는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상징물이다. [사진 출산파업 텀블러]

출산파업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의미의 모래시계를 배에 그렸다. 본래 모래시계는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상징물이다. [사진 출산파업 텀블러]

페피노는 “지금은 기후 비상사태다. 극심한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살기 힘든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출산파업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재앙 직전의 세계로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단체의 공동설립자 조세핀 페로렐리 역시 "더 뜨겁고 고통스러운 세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겠냐"며 "아무도 그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단체가 설립된 지 2주 만에 120여명이 출산파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페피노는 한 캐나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6월 기준 450명 이상이 출산파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산파업에 동참의사를 밝힌 이들 중 80%는 여성이지만 일부 남성들 역시 이 운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활동 중인 로리 데이도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는 건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며 "해수면이 오르는 것 뿐 아니라 식량 생산, 자원, 이주, 전쟁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며 기후 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동안 출산파업은 주로 출산과 육아·사회활동을 병행해야했던 여성들이 여권 신장 차원에서 주로 해왔지만, 페피노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출산파업을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출산파업과는 결이 다릅니다.
 
"인구 늘면 오염도 심각…1인당 이산화탄소 5톤 배출"
미래세대를 강조하는 또 다른 영국 환경단체 '가능한 미래'의 로고. [Conceivable Future 홈페이지 캡쳐]

미래세대를 강조하는 또 다른 영국 환경단체 '가능한 미래'의 로고. [Conceivable Future 홈페이지 캡쳐]

또 이들은 생태계가 파괴된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와 함께 인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환경이 오염된다는 이유를 들어 출산 파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세계은행은 평균적으로 인구 한명 당 일년에 이산화탄소 5톤을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선 출산파업이 지나치게 급진적인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내고 있습니다. 이에 페피노는 “출산파업은 이미 아이를 가진 사람을 비난하거나 아이를 갖지 말라고 강요하는 운동이 아니다”라며 “궁극적으로 기후변화의 두려움을 알리고 정치인들에게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같은 주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출산파업이라는 단어는 내걸지 않았지만 지난 2015년 설립된 환경단체 '가능한 미래(Conceivable Future)' 역시 기후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선 기존의 인구 재생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다른 영국의 환경단체 '인구문제(Population Matters)' 역시 "인구가 늘어날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고 열대 숲이 줄어든다"며 인구와 환경의 연관성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게 괜찮은가?"…높아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학교파업'에 참여한 독일 청소년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학교파업'에 참여한 독일 청소년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선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적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에선 기후변화가 중요한 사회·정치적 의제입니다. 미국 최연소 현역 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 3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아이들의 삶이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란 과학적인 의견들이 있는데 아직 아이를 갖는 것은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선 18~44세 응답자 가운데 삼 분의 일 가량이 아이를 가질지 말지 결정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죠. 온라인매체 쿼츠는 이를 가리켜 “밀레니얼 세대가 기후변화를 이유로 출산파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10대들을 주축으로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학교파업(School Strike)’ 운동도 진행 중입니다. 학교파업은 지난해 8월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돼 전 세계 161개국으로 퍼졌습니다. 이런 사회세력에 힘입어 지난 5월 열린 유럽의회선거에서 녹색당이 기존 52석에서 71석으로 의석을 늘리며 약진했습니다. 
 
프랑스 일부 지역에선 6월에 섭씨 45도가 넘는 등 기후변화가 극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출산파업과 학교파업 등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외침들이 과연 우리에게 '먼나라 뉴스'일 뿐일까요.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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