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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보복 아니면 뭐가 보복" 日기자들도 '궤변' 항의했다

중앙일보 2019.07.02 14:00
“세가지 품목 수출규제를 왜 한국에 대해서만 강화하느냐, G20(정상회의)이 끝나는 타이밍에 절차를 시작하면 대항조치(보복조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
 

수출규제 발표한 日정부 브리핑에선 무슨 일이
"징용으로 신뢰악화된 결과지만 보복은 아니다"
정부 설명에 "진짜 보복조치는 뭔가"질문쇄도
닛케이 "당했으니 갚아준다는 식의 보복 안돼"
FT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 드러낸 것"

“대항조치가 아니라지만, 징용 판결 처럼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이번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

일본측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를 발표한 1일 오전 주무부처 경제산업성 브리핑장에선 일본 기자들의 불만섞인 질문이 계속 터져나왔다.  
 
이번 수출규제가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준비해온 ‘대항조치’임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때문이었다.  
 
앞서 경제산업성 관계자들은 브리핑 모두에 이번 조치의 취지를 설명했다.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다. 현재 한국과의 관계를 보면 지금까지의 우호관계에 반하는 한국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징용 문제)에 관해 G20(정상회의)까지 만족스러운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았다. 관계 부처에서 검토한 결과 양국의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손상됐다고 판단하여….”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징용 갈등에 따른 양국 신뢰관계 저하를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거론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질의 응답이 시작되자 마자 갑자기 “징용문제에 따른 대항조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기자=“징용문제에 대한 대항조치인가.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본기업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경제산업성 관계자=“수출 관리를 적절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운용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대항조치는 절대로 아니다.”
 
‘징용문제로 신뢰관계가 악화돼 취한 조치이지만, 대항조치는 아니다’라는 궤변에 일본 기자들이 발끈했다.
 
“대항조치가 아니라면 왜 (징용문제 빼고)신뢰관계가 저하된 다른 원인이라도 있느냐”,“대항조치가 아니라면 이번 조치는 (정부 전체가 아닌)경제산업성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냐”,“진짜 대항조치를 취할때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이 기자들로부터 쏟아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일자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방침에 우려를 표시하는 해설기사를 1면에 실었다. 서승욱 특파원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일자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방침에 우려를 표시하는 해설기사를 1면에 실었다. 서승욱 특파원

하지만 경제산업성은 “왜 G20이 막 끝난 지금 타이밍에 조치를 취했냐고 묻는다면 징용 문제에 관한 제대로된 답변이 없었다는 것도 (지금 조치를 취하는)이유중의 하나”라면서도 끝까지 "대항조치는 아니다"라고 버텼다.  
 
또 “이번 조치로 한·일 양국간 대화 재개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 예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발언을 하지 않겠다”며 얼버무렸다.  
 
이날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설명엔 일본 정부의 모순된 태도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7월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징용문제 해결을 압박하기 위해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카드를 꺼냈지만, ‘자유무역을 훼손한다’는 국제적 비난이 두려워 보복조치임은 부인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취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를 놓고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내에서 가장 중립적인 매체로 통하는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2일자 1면에 ‘보복의 연쇄엔 승자가 없다’는 해설기사를 실었다. 
닛케이는 “일본이 주도해 도출한 G20정상선언문 속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무역 환경’이란 내용과 이번 조치가 과연 합치하느냐”고 비판했다. 
신문은 “수출규제는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과 경제에 미칠 위험이 크다”며 “‘당했기 때문에 나도 갚아준다’는 식의 보복이 확대될 경우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징용문제 대항조치의 응수를 자제하라’는 사설까지 게재했다.
 
보수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조치를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을 드러냈다”고 지적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 기사를 소개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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