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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손가락질 받은 천경자, 고통스럽더라도 나다운 삶을 선택한 용기

중앙일보 2019.07.02 05:00
 
 

"천경자 화백은 내가 이 시대에 한국 땅에서 태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살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인데요.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예술ㆍ꿈ㆍ사랑이 언제나 한국의 기성 사회가 원하는 질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죠. 그러니까, 당연히 한국에서 '마녀' '이단아' '단죄 받아야 하는 나쁜 여자'로 취급 받은 것이죠."

_장영은 문학연구자, 폴인 스토리북 <여자, 최초가 되다> 중에서 
 
[폴인을 읽다] 미완성의 인생을 위해 진심을 다해 살기
내 별명은 TMT(too much talker, 투머치토커)다. 말이 많기도 하지만 스스럼없이 내 이야기를 잘 풀어놓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한때는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민도 많이 했다. 왜 이렇게 쓸데없이, 솔직함이 지나치게,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인지에 대해. 이 고민은 자신을 문제가 있는 인간으로 여기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줬다. 그런데, 글쓰기 특강에서 한 작가의 말을 듣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매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작가는 “글은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잘 쓰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실제로 나는 줄곧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다. 자기 이야기는 하나 없고 남의 인생에, 실력에 감 놔라 배놔라며 평을 내리는 이들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알맹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천경자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만, 우리가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지금까지도 그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평생 자기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사람이라는 사실. 
 
많은 이들이 천경자의 삶 속 내밀하게 깔린 ‘한’이 작품에 드러난다고 말한다. 전쟁, 한 번의 이혼과 기혼 남성과의 생활, 네 명의 자식까지. 맞는 말이지만, 천경자의 삶은 단순히 ‘한’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굴곡진 삶을 살아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한’ 많은 인생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단순히 여인으로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겨서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 훨씬 담대하고, 큰 그릇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한’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폴인 스토리북 <여자, 최초가 되다> 중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천경자 화백이다. 
 
코스모폴리탄 화가 천경자 화백은 한 가지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평생 지켰다. [중앙포토]

코스모폴리탄 화가 천경자 화백은 한 가지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평생 지켰다. [중앙포토]

천 화백은 단 한 번도 대충 타협한 적이 없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화가로 일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돌연 홍익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역사를 후세에 남길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내린 결단이었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조직, 기관, 그리고 월급을 내팽개치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넓은 세상을 경험한 그는 학교 안에만 앉아 그림 그리는 것이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인도네시아 발리,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콩고, 세네갈, 모로코, 이집트 등을 거치는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이 전환점은 천경자가 코스모폴리탄 화가로 성장하는데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 그는 스케치 여행을 다니면서 한가지 화풍으로만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실제로 지켰다. 그의 결단력은 평생 녹슨 적이 없었다.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터졌을 때도 붓을 던져버리고 미국으로 가버린 것을 보면 그를 고약한 예술가라고 칭한 박경리 작가의 평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천경자는 나답게 살기 위해서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결정한 길을 걸어간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였던 것이다.
 
“나는 전쟁, 해방이라는 시류에 말려 흔히들 말하는 행복한 결혼을 하지 못했고 부딪쳐 오는 어두운 운명에 저항해야 했다. 말이 운명이지 그 시대에 내가 겪어야 했던 소위 고생은 인과응보였다고 할까, 앞서 말한 비애 서린 감상, 끝없이 새롭게 펼쳐진 자연을 너무 사랑한, 현실을 보는 눈이 초현실적이었다고 할까,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했다.”
 
천경자는 『나의 인생 노트』에서 이 시대에 한국 땅에서 태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생각하는 예술ㆍ꿈ㆍ사랑이 언제나 한국의 기성 사회가 원하는 질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아버지가 달라 성이 다른 자녀들을 키우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천 화백은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다.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가혹했다.
 
그의 삶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삶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이야기로, 예술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천 화백의 작품 속 여성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작품 자체의 힘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힘은 천경자라는 사람의 생애에서, 그 진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생애가 지닌 힘은 대단하다. 진심으로 본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미완성의 인생, 미완성의 작품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나 또한 갑작스레 불행이 닥쳐도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매력적인 사건 하나라고, 나중에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담아줄 그릇이 하나 생긴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미완성의 인생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삶은 매 순간이 영화일 테니까 후회도, 두려움도 없을 테다.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여자, 최초가 되다>의 표지. [사진 폴인]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여자, 최초가 되다>의 표지. [사진 폴인]

폴인 스토리북 <여자, 최초가 되다> 시리즈를 통해 ‘최초가 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장영은 문학연구자는 말한다. “단순히 영화 같은 삶을 산 인물이라고 느낄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여자, 최초가 되다>를 추천하며 덧붙이자면, 이들의 이야기를 품에 안고 더는 여성이 최초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김아현 객원 에디터 folin@foli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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