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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중앙일보 2019.07.02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그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함께 포탈 검색어에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그는 같은 날 오전 “외교·안보 채널을 동원해 알아보니 DMZ(판문점) 회동은 어렵고 전화 통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오후에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자 “기분 좋게 예측이 빗나갔다”며 "이번엔 빗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기분 좋게 빗나간 예측” 처럼
곤두박질치는 뉴스의 신뢰도
취재가 “사치”라고 불린다면…

기자 출신이라 속보가 중요했던 걸까. 그는 왜 살아 움직이는 팩트(사실) 앞에 겸손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최근 막말이나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알린 정치인 중에 유난히 전직 언론인이 많다. 그런 언어감각과 감수성, 판단력으로 어떻게 소통하고 기사 쓴 것인가.
 
그들은 기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몇몇 사례일 뿐이다. 요즘 기사 댓글들을 보면 기자의 취재 능력과 배경, 의도까지 간파하고 있다. 구글링 몇 번 하면 오보와 표절이 드러나는 시대다. 한국 뉴스의 신뢰도가 22%로 38개국 중 최하위(‘디지털뉴스리포트 2019’)라는 건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다.  
 
뉴스 신뢰도 문제엔 가치와 실력,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가치의 측면을 보자. 기자들은 알권리·사실 보도 같은 가치와 회사 이익·내부 방침 같은 조직논리 중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5대 5?” “6대4?” “3대7?” 아, 비중으로 이야기하지 말자. 그러는 순간, 기자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죽는다.
 
실력 측면을 보자. 기자가 된 뒤 작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지적 능력은 빠르게 퇴화한다. 느는 것은 교묘하게 베껴 쓰는 ‘우라까이’ 실력이요, 취재원을 압박하고 다독이는 테크닉이다. 자신의 실력 없음을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가리려 한다. 오보해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제 기자들 책임을 물어서 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기껏해야 150~200명 안팎의 취재인력으로 갈수록 전문화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을까. 기자 한명이 맡아야 할 취재 영역이 축구장 수백 개 넓이다. 그 정도 인원으로는 차라리 전문지를 하는 게 맞는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출입처 발생 기사를 넘기는데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기사 처리하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고 했다가 동석자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기사를 쓰죠?” 한 중견 기자는 ‘사법농단’ 재판에 빠짐없이 들어가고 싶어서 휴직을 신청하려다 후배 한마디에 움찔했다. “아니, 무슨 사치를 부리시려고?”
 
취재가 사치 부리는 일이 되다 보니, 서로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질 낮은 경쟁’에 몰두한다. 국회, 검찰청, 경찰서에 기자들이 몰려들어 너나없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심경이 어떠십니까?”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그 시간에 흩어져 다만 며칠이라도 자신만의 취재를 한다면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나 역시 기사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다르게, 잘 베낄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취재할 때는 얼마나 작은 노력과 비용으로 큰 성과를 거둘지, 가성비에 집착하곤 했다. 후배들에게 “왜 다른 기사 참고하지 않느냐”고 타박했고, “왜 빨리 취재하고 많이 기사 쓰지 않느냐”고 채근했다.
 
시간 들이고 땀 흘린 만큼 기사 쓸 수 있다. 올해 5월 ‘이달의 기자상’은 그 당연한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한겨레 기자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 달간 요양원에 들어가 실태를 고발했다.(24시팀 권지담 등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한국일보 기자들은 쪽방촌과 등기부 등본 더미에 들어가 약탈적 생태계를 파헤쳤다.(기획취재부 이혜미 등 ‘지옥고 아래 쪽방’) 기자란 직업의 자존심을 지켜준 그들이 눈물겹게 고맙다.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정태춘·박은옥은 노래한다.(‘92년 장마, 종로에서’) 시민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줄까. 정부기관과 기업에서 기사 스크랩이 사라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영향력도 사라지지 않을까. 기자들은 벼랑 앞에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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