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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동물국회도, 식물국회도 싫다

중앙일보 2019.07.02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꽉 막혀 답답했던 국회가 정상화됐다.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합의를 깬 지 나흘 만에 다시 수습해내는 것을 보면 그 정도는 해결할 정치력이 있어 보인다. 합의에 대한 불만도 있다. 정의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양대 정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필자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람 생각이 다 같을 수 없다. 그런 생각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정치다.
 

민주주의 제도 완성도 높지만
대화·타협, 양보·관용이 더 필요
제도보다 사람, 운영이 중요하나
사문화하지 않도록 규칙 지켜야

최근 정치가 실종됐다는 걱정이 많다. 여(與)고 야(野)고 자기 주장만 했지 대화하고, 타협해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말로는 소통이다, 포용이다, 외치지만 정작 대화는 없었다. 여론에 떠밀려 자리를 만들어도 돌아서면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성도는 훨씬 높다. 그게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도에 기대어 그 이상의 대화와 타협, 양보와 관용에 인색하다. 정권의 정통성이 보완됐지만, 그것도 도움이 안 된다. 대등한 동반자가 될 기회를 도덕성 시비로 적대적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서로 ‘독재자의 후예’, ‘친북 정권’이라고 비난한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의 발달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쟁 정당과의 대화를 오히려 가로막는다. 국회 안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기보다 국민을 상대로 선동정치를 한다. 대중 영합(포퓰리즘)이다. SNS의 특성상 자극적인 말을 쏟아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합의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당내 분위기는 강경 일색이다. 그런데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밥 잘 사주는 누나’, ‘호프 미팅’이라며 용케 대화로 이끌었다. 합의 번복의 위기에서도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하기보다 협상 상대를 배려했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력의 부재가 요즘 정치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과거 정치에는 돈과 물리력이라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었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가끔 야당에 그것을 조금 나눠주며 달래는 것을 정치라고 했다.
 
선거도 투명하지 않았다. 공명선거에 대한 신뢰가 생긴 건 최근의 일이다. 더구나 집권당은 선거제도마저 유리하게 비틀었다. 유신 말기이던 1978년 10대 총선에서는 집권당(공화당+유정회)이 31.7%로 야당인 신민당(32.8%)보다 적은 표를 받았다. 그런데도 의석은 145석으로 신민당(61석)보다 2.4배나 많았다.
 
다른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국구 절반을 제1당에 먼저 배분하기도 하고, 의석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해 뽑는 기발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국민이 준 표와 의석수가 다르게 설계한 탓이다. 정치학자들이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최대한 가깝게 개선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도 이런 선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다.
 
어쨌건 제도적 꼼수와 돈과 권력에 밀린 야당은 합법적 저항이 쉽지 않았다. 장외로 나가고, 단식으로 여론을 환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야당 의원들에게는 통고도 없이 회의장을 바꾸고, 찬반 숫자도 확인하지 않고 통과를 외치는 날치기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건 육탄전밖에 없었다.
 
13대 국회는 큰 전환점이었다.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의석대로 배분하는 관행을 만든 게 그때다.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맞았을 때다. 원칙대로 표결하면 국회의장이고, 상임위원장이고, 야당이 모두 차지하게 생겼다. 이 바람에 의석대로 나누는 타협을 한 것이다. 국회 운영도 합의를 전제로 했다. 3김씨의 정치력이 그렇게 몰아갔다. 이로써 국회 운영이 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권만 챙기고, 다시 ‘동물국회’로 돌아갔다.
 
‘국회 선진화법’은 그래서 만들었다. 다수결보다 교섭단체 대표끼리 협의해 운영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그러자 이제 ‘식물국회’ 논란이 벌어졌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회법의 이 조항을 고치려 했다. 집권당에는 이 조항이 눈엣가시였다. 다수당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다.
 
그나마 다수결의 마지막 보루가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제도다. 상임위 재적의원의 5분의 3이 찬성해야 한다. 그래도 최소 180일, 길면 330일 걸려야, 통과가 아니라, 본회의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
 
다수결이 최선은 아니다. 정치는 소수 의견까지 받아들여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그래서 제도보다 사람, 운영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어도, 여야의 위치가 달라져도 그 정신을 유지하려면 제도부터 지켜야 한다. 한번 무너지면 사문(死文)이 된다. 선출된 권력인 정치인을 사법기관에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라도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놓고 가야 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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