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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한국 경제 아픈 곳 때렸다

중앙일보 2019.07.02 00:07 종합 1면 지면보기
일본 정부가 1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반도체 부품 등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동했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혀 한·일 간 벌어졌던 과거사 갈등은 이제 ‘경제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징용판결 보복, 경제전쟁 비화
반도체·스마트폰·TV 부품
일본 “신뢰 관계 손상” 수출 규제
한국 “WTO 제소 등 대응조치”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전 공개한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용 개정에 대해’ 자료를 통해 한국의 주력 제조업 분야인 TV·스마트폰·반도체 부품에 대한 규제를 4일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TV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리지스트’와 에칭 가스(고순도불화 수소) 등 총 3개 품목을 이달 4일부터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별적인 수출 허가 대상으로 바꾼다. 따라서 4일부터 한국에 관련 품목을 수출하려면 계약 건당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안보 우호국을 ‘화이트(백색) 국가’로 지정해 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첨단재료 등의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해 주는 외국환관리법상 제도의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도 포함했다. 일본이 ‘화이트 국가’로 지정한 국가는 27개국인데 이 리스트에서 다시 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3개 품목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수출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사실상의 금수조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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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이번 규제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수출관리제도의 적절한 운용을 위한 것으로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항조치가 아니다”(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 부장관)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산업성은 관련 브리핑에서 “한국이 징용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까지 제시하지 않으면서 양국 간 신뢰 관계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임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특히 시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는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기습적으로 칼을 뽑아든 모양새다.
 
경제산업성은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한국이 관련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이유를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들었지만 그 내용은 함구했다. 경제산업성은 또 브리핑에서 “금수조치는 아니다”면서도 “관련 품목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해 보복 조치의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일본 조치와 관련,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향후 WTO 제소를 비롯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닛케이 “일본 조치는 극약처방 … 한국 기업의 탈일본 초래”
 
아베 일본 총리가 1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일본은 한국에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가 1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일본은 한국에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성 장관은 “일본 정부의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치”라고도 규정했다. 성 장관은 지난 주말 일본에서 치른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일본의 자세도 문제 삼았다. 그는 “수출제한 조치는 WTO 협정상 원칙적으로 금지될 뿐만 아니라 지난주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 선언문의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 환경을 구축하고, 시장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G20에선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니 스스로 말을 뒤집는 일본의 이율배반적인 조치를 꼬집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도 이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이번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조 차관은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우리 연관 산업은 물론 양국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날 경제산업성의 발표 자료와 브리핑엔 이번 조치가 정치적 관점에서 취해졌음을 드러내는 대목이 자주 등장했다.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 관계를 토대로 구축되는데, 관계부처들의 검토 결과 한·일 관계는 신뢰가 현저하게 손상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일본 정부가 징용 문제와 관련해 요구해온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던 것도 (이 시점에 관련 조치를 발표한)이유” 등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번 조치를 ‘극약 처방’이라고 규정했다. 신문은 "국제사회에서 그동안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해왔던 일본이 ‘통상의 룰을 자의적으로 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서 "일본산 반도체재료 등의 안정적 조달이 어려울 경우 (한국 기업이)다른 조달처를 찾아 나서는 등 ‘탈(脫) 일본’ 움직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세종=김기환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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