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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기료 인상’ 결국 국민에 청구서

중앙일보 2019.07.02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김종갑 한전 사장. [연합뉴스]

김종갑 한전 사장. [연합뉴스]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정부의 올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한 적자를 메우기 위한 고육책이다.
 

여름철 1만원 인하 수용하는 대신
할인 폐지, 주택용 누진제 개편 등
사실상 요금 올리는 방안 추진

한전은 1일 ‘주택용 누진제 및 전기요금 체계 개편 관련 사항’을 공시했다. 한전은 “국민의 하계 요금부담 완화와 함께 재무여건에 부담이 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요금체계 마련을 위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전이 마련한 개편안을 인가 신청하면 정부가 관련 법령·절차에 따라 조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공시 행간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두 가지다. 먼저 ‘재무여건에 부담이 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요금체계’란 부분이다. 돌려 말했지만 전기요금을 올리겠다는 얘기다. 둘째로 ‘정부가 ~조치하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한전이 독자적으로 요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정부와 교감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날 한전이 밝힌 전기요금 개편안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전기 사용이 적은 경우 최대 4000원 할인)의 폐지 혹은 수정·보완 ▶누진제(전기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 단가 인상) 폐지 혹은 국민이 스스로 전기사용 패턴을 고려하여 다양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적 전기요금제 등으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국가 에너지소비 효율을 높이고,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원칙을 분명히 해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는 내용 등이다.
 
한전 입장에서는 중요한 수익원인 전기요금을 ‘복지 포퓰리즘’과 분리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한전은 “전기요금과 에너지복지를 분리하고, 복지에 대해선 요금체계 밖에서 별도로 시행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조속한 시일 내 실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지루하게 이어온 전기요금 개편안 논의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한전은 전기요금 개편안을 올해 11월 30일까지 마련해 2020년 6월 30일까지 정부 인가를 받겠다고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한 정부가 한전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로 전기요금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필수 사용량 보장 공제 제도 폐지, 누진제 폐지 등과 관련해 한전과 사전에 협의한 바 없다”면서도 “한전이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내년 상반기 중에 마련해서 인가를 신청하면 관련 법령·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전이 전기요금 개편에 불씨를 댕긴 건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정부의 전기요금 인하안을 받아들이면서다. 한전 이사진은 이날 여름철 전기요금을 가구당 1만원가량 내리는 내용의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했다.
 
앞서 전기요금 누진제 민관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18일 7~8월 여름철에만 누진 구간을 확대해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했다. 개편안대로라면 지난해 사용량 기준 전국 1629만 가구가 전기요금을 월평균 1만142원 할인받는다. 반대로 요금이 오르는 가구는 없다. 이로 인해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2847억원에 달한다. 1일 공시는 전기요금 인하안을 받아들인 한전이 정부에 내민 ‘청구서’ 성격이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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