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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의 이코노믹스] ‘세계화의 우등생’ 한국, 각자도생의 탈세계화 직면하다

중앙일보 2019.07.02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탈세계화 시대의 세계경제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해 9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미국 국민에 의해 통치된다. 우리는 세계주의 이념을 거절하고, 애국주의를 신봉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탈세계화 노선을 세계에 알렸다. 짧게는 지난 30년, 길게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해 왔던 세계주의를 이제는 미국 스스로 파기함으로써 세계는 탈(脫)세계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탈세계화 노선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탈세계화 노선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국민 요구하는 정치·국익을 우선시
세계화 거부하면서 민족주의 확산
다자간 협정 대신 양자간 협정 중심
미국은 수호자에서 포식자로 둔갑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들여 왔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같은 해 6월에는 미국 근로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킨다는 이유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195개국이 가입한 파리협약을 탈퇴했다.
 
세계화·국가 주권·민주주의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로드릭(Dani Rodrik, 『The Globalization Paradox』, 2011)의 모델에 따르면, 세계주의 시대에는 각국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세계화를 상위가치로 하고 국가 주권과 민주주의를 양보했다. 그러나 탈세계화 시대에는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와 국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화를 거부하는 구조로 바뀐다.
 
탈세계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퍼지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연합(EU) 의회선거에서 중도보수 정당과 중도진보 정당이 사상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상실했지만, 민족주의 정당과 극우 포퓰리즘 정당과 녹색당이 약진했다. 이런 선거 결과는 향후 유럽에서 탈세계주의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지각변동은 극심하다. 무역체제는 다자간 협정 중심에서 지역 또는 개별 무역협정 중심으로, 국정의 중심은 세계 이슈 중심에서 국내 이슈 중심으로 이동한다. 또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선다. 국제적 문제 해결방식은 협정이 정한 규칙 중심에서 양자 간 협상으로 흘러간다. 한 마디로 어떤 결과도 보장되지 않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다. 보편적 예상의 실현을 장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세계의 수호자 포기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주도 사회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수호자로서 동맹국들에 브래튼 우즈 체제의 울타리를 제공했다. 즉 동맹국들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공급하고 낮은 관세로 미국 시장을 개방해 경제개발을 촉진했다.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면서도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안보로는 2001년 9·11 테러사태로, 경제적으로는 ‘중국 충격’으로 산업의 약화와 실업의 증가로 국내 고통이 증대함에 따라 세계 평화와 번영의 수호자로서 관용과 너그러움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양극화의 상처가 심화하면서 중산층이 와해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시장의 패자가 양산됐다. 미국 상위 10%의 소득비중은 1980년 10%에서 2016년 20%로 높아졌지만 같은 기간 하위 50%의 소득비중은 20%에서 13%로 낮아졌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탈세계화 정책을 단행하고 있는가. 한 조사(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의 생활은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에 비해 과거보다 어려워졌고, 다음 세대의 미래도 비관적이라는 응답이 현저하게 높았다. 즉 트럼프 지지자들이 클린턴 지지자들보다 미국의 장래에 대해 훨씬 더 비관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 기조의 변화를 넘어선 특단의 정책이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생양으로 중국 제재와 탈세계화 노선을 선택했다.
 
최근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과 중국 간의 상호 관세 부과가 세계 경제성장률을 2019년 0.4%, 2020년 0.5%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조차 관세 인상이 세계 무역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며, 특히 지지자들의 공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꿀수록 미국의 무역 협상력은 더욱 강해지고, 그 결과 미국은 더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런 정치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주의 노선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성공할까. 빗나갈 수도 있지만, 실패하리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지배적 전망이다. 우선 관세 부과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초래한다. 반면에 수입을 대신해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결과적으로 수입선이 중국에서 베트남 등 다른 나라로 바뀌는 효과가 클 뿐 미국의 이익은 크지 않다.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중국의 반도체 개발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조차 상당한 손실과 기술개발이 지연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거둘 국익 역시 크지 않다는 얘기다.
  
탈세계화의 삭막한 귀결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통신기술 유출 금지 조치(5월 15일)를 내리자 이에 중국이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블랙리스트’로 대응함으로써 세계 공급사슬은 왜곡되고 있다. 미국은 지적 재산권을 무기로, 중국은 거대 시장을 무기로 세계 기술기업들 편 가르기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압박해 중국을 굴복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구체화한 결과다. 기업들은 무역정책과 세계 투자환경이 내포하고 있는 불확실성의 위험을 절감하면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상당 기간 세계 무역과 글로벌 공급사슬의 위축이 불가피한 이유다. 따라서 탈세계화를 선택한 대가는 무역과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와 이로 인한 무역과 투자의 위축, 세계 경제 침체, 투자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기에 십상이다.
 
결론적으로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와 국익을 추구하는 보호주의 경향은 2020년대 세계 경제를 저성장 시대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세계가 포플리즘 정치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미국이 보호주의를 포기하고 다시 세계의 수호자로 돌아오기까지 세계 경제 얼마나 오래, 얼마나 큰 혼란과 저성장의 고통을 치를 것인가에 있다.
 
세계화 후퇴로 한국 어려움 가중
세계 상품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1993년 2.2%에서 2017년 3.5%로 높아졌다. 그만큼 한국은 세계화 시대의 혜택을 중국 다음으로 크게 누렸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가 후퇴함에 따라 역으로 한국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화와 관련해 한국은 세 가지 심각한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미국은 지적 재산권을 무기로, 중국은 시장을 무기로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사슬로 중국을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에서 중국 수입의 1위 국가(작년 9.6%)인 대한민국을 그대로 방치할 리 없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더 중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우위가 아니라면, 중국은 한국 기업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논리적 해답은 분명하다.
 
둘째, 국내총생산(GDP)의 55%를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은 세계화의 후퇴와 세계 무역의 장기침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장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세계 공급사슬에서 한국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셋째, 앞서 인용한 로드릭의 모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국가 주권과 민주주의를 최우선가치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어 세계화를 함께 추구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내지향적인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는 글로벌을 지향하는 혁신성장과 함께 가기 어렵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대한민국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과연 이대로 탈세계화와 저성장시대를 맞아도 될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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