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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6. 심청의 고장 백령도

중앙일보 2006.07.11 19:52 종합 28면 지면보기
2004년도 심청효행상 수상자들과 기념촬영한 필자.
백령도는 '효녀 심청'의 고장이다.


매년 효성 지극한 여학생들 뽑아
심청 효행상 시상하고 취업 알선

백령길병원을 운영하면서 나는 '심청전'에 나오는 지명이 실제로 백령도에 있고 심청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것에 놀랐다. 장산곶(날씨가 좋으면 백령도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 땅).인당수.연화봉 등은 실존하는 지명이다.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바친 효녀가 아닌가. 나도 어릴 적 어머니가 읽어주신 심청전을 들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백령도는 요즘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젊은 사람이 별로 없어 노인들이 대부분 고기잡이.농사 등 생활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신경통을 앓거나 잔병치레가 잦은 노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백령길병원에서 모든 주민의 건강기록부를 작성해 정기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1998년에는 도서 지역 가운데 최초로 물리치료실을 개설해 주민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중 백령종고 백원배 교감 선생님이 "이곳이 심청의 고장이니 '심청 동상'을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백령도의 자랑거리인지라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까지 백령도를 대표하는 상징이 없었다. 마침 인천시 옹진군도 효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장산곶이 바라다보이는 고봉포 앞산 정상에 심청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나는 99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심청각 앞에 심청 동상을 세웠다. 15세의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 때의 절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버지를 위해 배를 탔지만 어린 나이에 시퍼런 바다가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거친 파도를 보지 않으려고 치마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던지는 심청의 모습을 형상화했던 것이다.



같은 해 나는 '심청 효행상'을 제정하고, 심청각 준공식에 맞춰 백령도에서 제1회 시상식을 했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천문화재단에서 매년 주최하고 있는 이 행사는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는다. 심청 효행상은 지성으로 효를 실천하고 있는 전국 12~18세의 초.중.고 여학생 가운데 교육기관.자치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수상자를 선정한다.



지금까지 배출된 '심청'은 45명에 이른다. 저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진정으로 효를 실천하고 있는 연꽃같은 존재들이다.



1회 수상자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효행을 실천한 공로'로 청와대에 초청받기도 했다. 수상자가 나온 학교와 고장에선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잔치 분위기라고 한다. 이들의 효에 대한 언론사의 취재 열기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대상을 받은 '심청'은 어머니께 간을 이식해 준 마산의 한일전산고 박순미양이다. 박양은 간 이식 전날 밤 어머니와 병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지난 이야기와 수술 뒤의 희망찬 내일을 고대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날 간 이식이 이뤄졌지만 어머니는 수술 뒤 깨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어머니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박양의 애절한 수상소감은 400여 명의 축하객들로 가득 찬 행사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심청으로 선정된 수상자들에겐 우리 재단 취업에 특전을 준다. 현재 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백령도는 나에게 의료취약지 병원을 운영한 곳이라는 점 외에 심청의 고장으로 효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고장이기도 하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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