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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출근한 의사에게 "뭐하러 나왔냐"고 물어보니

중앙일보 2019.07.01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23)
강원도 한 병원의 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중환자는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나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강원도 한 병원의 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중환자는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나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오프인데 뭐하러 나왔어?”
“환자 상태가 안 좋잖아요.”
“왜? 내가 못 미더워?”
“아뇨. 그럴 리가요. 교수님이 봐주시면 안심이죠.”
“그럼 그냥 쉬지. 네가 온다고 환자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제 환자잖아요.”
 
중환자실 담당의. 그가 맡은 환자 중 하나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오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에 나왔다. 아마 책임감 때문이리라. ‘내 환자’라는 표현이 유난히 가슴에 와 맺혔다. 전통적으로 입원환자는 담당의가 맡는다. 주로 전공의들이다. 담당의에게 환자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다. 가족 이상의 의미가 있다. 환자에 대한 모든 공과 과를 떠안기 때문이다.
 
환자가 좋아져도, 혹은 나빠져도 모든 책임은 담당의 몫이다. 환자가 무사히 퇴원하면 어깨에 뽕이 들어가고, 환자를 잃게 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때로 독한 소주잔에 눈물짓는 의사를 본다면, 그는 십중팔구 담당의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담당의 시스템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한 도덕과 윤리를 자극하는 제도였다. 가족 공동체 중심의 우리 문화와도 결을 같이 한다. ‘남을 위한 대가 없는 희생’을, 강요 없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환자가 나빠졌단 보고가 들리면 새벽에도 침대를 뛰쳐나와야 했다. ‘환자의 생명’이라는 가치는 감히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휴식 시간이나 당직비 같은 정당한 권리도 당연한 듯 묵살되었다.
 
잠을 자다가도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뛰쳐나가곤 했다. 다른 환자를 돌보고 있는 교수님들께 내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간청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사진은 경기도에 있는 한 종합병원의 내과 전공의 당직실. 일주일에 평균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로선 좁은 공간조차 정돈할 여력이 없는 듯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중앙포토]

잠을 자다가도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뛰쳐나가곤 했다. 다른 환자를 돌보고 있는 교수님들께 내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간청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사진은 경기도에 있는 한 종합병원의 내과 전공의 당직실. 일주일에 평균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로선 좁은 공간조차 정돈할 여력이 없는 듯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중앙포토]

 
내 담당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중환자는 늘 예고 없이 나빠졌다. 여러 과의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는데, 보통의 협진 절차로는 제때 치료를 제공하기 힘들었다. 별수 없이 두 발로 뛰어야 했다. 다른 환자를 시술 중인 교수님을 찾아 결례를 무릅쓰고 간청을 드리는 경우가 잦았다.
 
“이대로면 제 환자가 죽습니다. 제 환자 먼저 봐주십시오.”
 
불청객을 쏘아보는 교수님의 눈빛은 언제나 흉흉했다. 불쑥 찾아와서 일을 방해했으니. 나는 죄인처럼 얼어붙어,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비굴한 표정으로 굽신거렸다. 이어서 나는 (나보다 100배는 지식이 많은) 교수님께, 내 환자가 다른 환자보다 급한 이유를 설득해내야 했다. 그 과정은 당연히 녹록지 않았다. 무차별 질문 폭격을 버텨내야 했다. 항상 땀에 흠뻑 젖을 때쯤에야 겨우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그래도 마냥 좋기만 했다.
 
‘이걸로 내 환자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될 테니….’
 
촌각을 다투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졌고, 나는 검사나 치료를 당기기 위해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돈 한 푼 안 생기는 일이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저 의무만 있었다. 담당의에게 환자란 내가 응당 모셔야 할 노부모와도 같았다. 당연히 환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담담의 시절 환자 하나하나에 나의 부모를 모시듯 간절함을 담아 책임과 정성을 쏟았다. 담담의 의식이 깊이 박히다 보니, 다른 직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사진은 서울의 모 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사가 회의실 책상에 엎드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담담의 시절 환자 하나하나에 나의 부모를 모시듯 간절함을 담아 책임과 정성을 쏟았다. 담담의 의식이 깊이 박히다 보니, 다른 직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사진은 서울의 모 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사가 회의실 책상에 엎드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책임에 헉헉대기 일쑤였다.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에겐 의지 부족이란 낙인이 찍혔다. 그게 담당의였다. 나뿐 아니라 내 선배들도, 교수님들도 그 시절엔 모두가 똑같았다. 담당의 의식이 뿌리 깊게 박히다 보니, 보통의 평범한 직원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근무 시간이 끝났다고 퇴근하는 직원에게 화가 났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엄연히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 내 직종 아니던가? 내 환자 검사를 내일로 미루는 이들에게 분노했다. 환자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밤을 새우지 않는다고? 병원은 컨베이어 벨트로 이루어진 공장이 아니다. 맡은 업무만 처리하고 규정만 읊조리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다른 직종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모든 제도는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 오늘날 담당의 시스템은 빠르게 와해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차츰 색을 잃어가고 있다. 더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추가로 밤을 새우지 않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른 누군가가 일을 대신한다. 타인을 위해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에 맞춰 빠르게 혹은 느리게 절차대로 굴러간다. 누구나 표준적인 진료를 받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여러 의사가 나누어서 진다. 내 환자라는 도덕의 굴레에 퇴근을 미루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환자도 하나의 상품이며, 의사는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일 따름이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건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고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병원도 그렇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게 바람직한 변화인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사회는 그리고 법안은,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는 찬반을 떠나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수레바퀴다.
 
오늘 나는 요새 보기 드문 낭만주의자를 만났다. 무려 ‘내 환자’를 운운하며 오프에 병원을 찾은 담당의다. 오랜만에 피가 들끓었다.
 
“그래. 네 환자. 살려보자!”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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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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