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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오너 리스크는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9.07.01 00:40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얼마 전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보고서다.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던 기업이 수천억 원의 적자를 냈는데, 정부는 “잘했다”는 칭찬을 했으니 말이다.
 
한국전력 얘기다. 한전은 2017년 4조953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018년 경영평가에서 ‘양호한 경영을 했다(B)’는 평가가 내려졌다. 누구나 수긍했다. 그런데 2018년 한전은 2080억원의 적자를 냈다. 1년 만의 급전직하다. 민간이든 공기업이든 이 정도면 굿판이 벌어질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격려를 받았다.
 
이유가 기가 막히다. 사회적 가치 정책을 구현했단다. 경영실적은 엉망이지만 일자리 창출 같은 노력을 많이 해 상쇄했다고 한다. 한전의 핵심 사업은 전력수급과 송·변전, 배전, 미래성장사업이다. 경영실적을 보면 핵심 사업이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부는 그렇게 안 봤다. 한전의 핵심 사업이 인력을 많이 뽑는 것으로 갈아치워진 느낌이다.
 
경영평가가 좋게 나왔으니 한전 직원들은 성과급을 받게 된다.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 돈 잔치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러면 경영을 제대로 할 이유가 없다. 핵심 사업이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뀌는데, 정권에 빌붙는 것만큼 좋은 경영전략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품행이 방정하고 말 잘 듣는 기업’으로 이쁨 받으면 격려금이 뚝 떨어지는데 말이다. 내부에서 “사람을 너무 많이 뽑아서 시킬 일이 없다”는 걱정이 나와도, 그건 ‘정권형 경영’에 반하는 행위다. 이러니 이사들이 요금 인하에 반대하다 찬성으로 돌변한 게 이상하지 않다. ‘아차, 정부가 원하는 건데’ 싶었을 게다. 배임 혐의 따위는 ‘태도 불량’이란 낙인 앞에 고려거리도 안 된다.
 
한전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다.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자를 낸 원인부터 따지는 게 순서다. 원인이 밝혀지는 게 두렵지 않고서야 “경영을 잘했다”고 칭찬을 할 수 있는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경영’의 본질마저 뒤바뀌니 민간에서 “정부를 못 믿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한국 기업인 대상 조사)
 
민간 경영계를 대하는 태도라고 다를까.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선포식에 걸맞은 긍정적인 코멘트를 내 달라고 부탁해왔다”고 말했다. 회원사인 현대중공업에 폭력사태가 벌어져도 지나치게 묵묵하던 경총이었다. 그런 경총을 비롯해 모든 경제단체가 일제히 코멘트를 낸 배경에 정부의 청탁이 있었다면, ‘지지 성명 동원령’과 다를 게 뭔가.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금지 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태도라곤 믿기지 않는다.
 
경영학회에선 오너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추락을 꼽는다.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옛 금호그룹 재현이란 욕심에 무리한 차입경영을 했다. 그 바람에 한 해 수조 원을 버는 아시아나항공마저 망가졌다. 사태가 악화해도 오너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념 구현을 위해 국민 호주머니 차입(세금) 경영을 하는 지금 정부와 오버랩 되는 건 지나친 걸까.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권 이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것에 대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망가져 가는 대한민국 경제를 힘겹게 견디고 있는 국민으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외국 오너의 경제를 대하는 태도를 칭찬할 게 아니라 우리는 왜 2년여 만에 허물어졌는지 반성할 수 없는 건가. “오너 리스크는 고집만 버려도 없앨 수 있는데…”라던 원로 경제학자의 독백이 여운으로 울린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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